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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Feb 06. 2020

카페알바이야기-마감근무편

일하는 내내 기쁨으로 슬픔을 버텼다

기억에 남는 진상고객이 많은 것 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나의 진상같은 실수담도 많다. 내가 초기에 했던 실수 중에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어이없는 일이 있는데 그건 떠먹는 요거트를 주문한 고객에게 그 요거트 입구보다 더 큰 숟가락-죽을 떠먹는 용-을 함께 제공했던 일이다.

요거트와 물을 함께 주문했던 고객은 내게 와서 벙찐 표정을 지으며 “이걸 어떻게 떠먹으라고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웃겨서 웃으며 거듭 사과했었다.


이후로 그 고객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는데, 안타깝게도(?)  알바하는 내내 거의 매일 마주치게 됐었다. 그는 단골 중의 단골이었다. 날마다 퇴근 후 우리 매장에 들러 공부나 일을 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예순에 가까워보였는데, 그럼에도 날마다 퇴근 후에도 자기계발을 하는 열정에 나는 크게 감탄했었다. 심지어 주문하는 것조차 요거트와 물이라니, 건강관리까지 염두에 둔 것 같은 그의 선택은 내가 일을 시작한 때부터 그만두었을 때까지 쭈욱 계속되었다.


그 고객 외에도 마감에는 각자 공부할 거리나 읽을 책을 가지고 와서 몇시간을 불태우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두꺼운 전공서적이나 외국어프린트물같은 것들이 펼쳐진 모습들을 볼 때면 나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했다.


마감을 할 때는 확실히 다른 때보다 여유가 있었다. 카페의 입지나 기타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아침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이 바쁘다는 것은 대부분 공통된 특징일 것이다. 출근의 압박이 있는 때와는 달리, 고객들과 몇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때는 대부분 마감근무때였다. 늘 함께오는 애인이 바뀌는 고객의 경우를 보기도 해서 나는 <애인 바뀌신분 그냥 들어오세요. 모르는 척 해드립니다>같은 영업문구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시식용 푸드와 음료를 돌릴 때도 알바가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샘플링용 푸드와 음료를 준비해서 계산대 옆에 올려두곤 하는 바쁜 오전, 오후시간과는 달리 마감이 가까워졌을 때면 그것들을 직접 매장을 돌며 고객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안먹는다며 손을 내젓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환한 미소와 격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때가 그때다. 그럴 때면 내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아닌데도 행복을 느꼈다. 내것이 아닌 것을 받는 이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니, 내 잘못이 아닌 업무에 대한 불만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차곤 했었다. 입사지원서에 쓴 대로 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 예민한 성격이지만 사람에게 감동도 격하게 받는 민감한 성격이어서, 일하는 내내 기쁨으로 슬픔을 버텼다.


연말에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 모두 근무를 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한껏 꾸미고 들어오는 고객들이 많았다. 특히 매일 잠바를 입고 와서 공부를 하고 가던 한 고객이 그날은 코트와 명품목도리로 빼입고 와서 매장에서 여자친구를 만나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커플들은 행복해보였고 사람들은 모두 설레보였다. 그날 저녁만큼은 아무도 진상을 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주문을 마치고 수줍게 메리크리스마스, 혹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라는 인사를 건네며 음료를 받아들었다. 이런 행태는 한해의 마지막날과 새해 첫날에도 비슷하게 반복되어서, 나는 카페알바하면서 인류애가 다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인류애를 찐하게 느끼기도 했었다.


나는 사실 마감이 너무 행복했었다. 사실 육아를 병행하려는 내게는 최악의 근무형태였다. 내가 퇴사를 한 가장 큰 원인이 마감근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기도 하다. 늘 힘든 기억이 아름답게 남는 이유는 뭘까. 마감의 추억들이 내게는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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