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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Apr 06. 2020

엄마의 소시지반찬

엄마밥 좋아하세요?

지금은 서로서로 겸손해졌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친한 엄마들끼리 아이자랑배틀을 벌이는 경우가 제법 자주 있었다. 놀이공동체를 만들어주기 위해 하루종일 함께 공동육아를 하던 시절이라 워낙 오래 붙어있었고, 자연히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절이었다. 자랑의 소재가 되는 건 주로 한글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 영어를 얼마나 빨리 시작했는지, 책을 얼만큼 좋아하는지 같은 공부에 관한 것들, 키가 얼마나 큰지나 기저귀를 얼만큼 빨리 뗐는지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내 기를 살려준 건, 우리 애가 식성이 얼마나 좋은 지에 관한 거였다. 엄마들은 그걸 어느집 아이가 영어를 네이티브수준으로 한다는 것 만큼이나 부러워해줬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식습관을 잘 들여줬나보다고 나를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의 식성은 타고나는 것이지 부모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말로 겸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내 딸은 채소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토마토와 브로콜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유식을 만들면서부터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챘다.  신기했다. 내가 엄마에게 들어왔던 단골멘트는 너는 어릴 때 너무 예민해서 키우기 힘들었고, 특히 가장 힘들었던 건 입이 짧고 편식이 너무 심하다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너같은 딸 낳아봐야 안다고 말해왔던 엄마의 말을, 나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유식을 만들어줄 때마다 다 잘먹고, 가리는 게 없는 아이를 키우느라 이유식을 더 열심히 해대느라 힘들다고 툴툴 댔지만, 힘들게 만든 이유식을 죄다 버리는 마음을 아냐고 묻는 사람들의 말 앞에선 내가 받은 복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딸이 밥을 먹기 싫어하는 날이면, 내가 내놓는 특별식은 토마토와 브로콜리삶은 것이 되었다. 입맛이 없다던 딸도 토마토를 잘라 치즈를 얹고, 브로콜리를 데쳐서 내놓으면 순식간에 헤치우곤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내게 질투가 날 정도로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입맛이 없는 날 엄마가 내놓았던 특별식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건 물에 만 흰 쌀밥과 함께 나온 구운 소시지반찬이었다.


소시지는 우리 집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햄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소풍김밥에조차 김밥햄 대신에 간 소고기를 넣었다. 모든 음식을 맛보다 영양소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음식철학 때문에 자주 싸우긴 했지만 이젠 엄마가 그렇게 음식의 재료들에 집착한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워낙 먹는 양이 적었던 내가, 그 적게 먹는 음식만으로라도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길 바랬을 것이다. 아이가 밥을 거르고 놀거나 일찍 잠이 들거나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느껴져 자는 애를 깨워서 밥을 먹일까 고심하는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정말로 모든 자식은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마음을 안다는 말이 꼭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단 한번 먹은 흰쌀밥에 소시지반찬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내 유년의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많은 건강식을 차려줬는데, 내가 꼽을 수 있는 밥상이 소세지 하나 달랑 나온 그날의 밥상이었다고 말하면 엄마는 억울해 한다.


결혼을 하고나서 나는 요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막막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났었는데, 그 이유는 소시지만 잔뜩 사다 구워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주를, 그 후로도 한참을, 비엔나 소시지만 구워 맨밥에 먹는 걸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나는 소시지에 조금은 질리고 말았다. 몸이 안좋은걸 느끼면서 양파를 추가하게 되고, 그러기를 또 몇번 하다가 제대로 된 반찬을 차려먹게 되었다.


영양소를 맛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타고난 입맛이 워낙 저질(?)인 탓에, 가끔은 소시지만 구워서 혼자 밥을 먹는다. 여전히 딸은 동참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기어이 엄마의 고단했을 ‘세끼차리기 밥순이시절’이 떠오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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