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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03. 2024

잠들어가는 휴대폰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실직자가 되면서 변화된 것 중 하나는 시끄럽게 울려대던 휴대폰 벨 소리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업무 내용을 묻는 동료들의 전화나 거래처들의 전화,  친구나 가족들의 전화 등으로 휴대폰이 쉴 틈이 없었다. 전화가 오지 않는 주말을 간절하게 기다릴 정도였다.


퇴직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회사를 떠난 이유를 묻거나 위로와 격려를 남기는 전화, 업무 인수인계로 걸려오는 후임들의 전화, 안부와 함께 회사 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동료들의 전화 등으로 통화 내용이 바뀌기는 했지만 휴대폰 벨 소리가 끊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이외에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업무로 인해 회사 동료들이나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전화 올 일이 없어졌다. 회사에서 퇴직을 실시한 지 이미 몇 달이 지났고, 그사이에 모두들 안정된 일상을 되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회사이고 시스템이니까.


어찌 되었든 내 휴대폰은 조용히 잠들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꿀맛 같은 단잠을 잘지, 아니면 긴 동면에 들어가는 곰처럼 오랜 잠을 자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오랜 직장 생활 속에서 이어져왔던 인연의 끈들이 모두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구슬프게 일깨워 줄 뿐이다.


허전함과 허탈함이 거센 물결처럼 몰아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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