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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04. 2024

밥값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어김없이 매일 찾아오는 점심시간. 회사에 다닐 때나 실직자인 지금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변함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오늘은 또 뭘 먹지?’


퇴직 전에는 주위에 이 질문을 받아주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 자신에게 자문자답을 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나름 출근이란 걸 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에서 가까운 식당에 간다. 밑반찬이 다섯 가지나 나오는 8천 원짜리 대구탕에 고등어구이가 추가로 나온다.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 높은 착한 식당이다. 밥값이 싸다고 음식의 질이나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식당들보다 이 식당을 찾는 횟수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식당을 찾는 손님이 그리 많아 보아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나라도 이 식당을 자주 찾아 사장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은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서는 만원 이상의 밥값을 지불해야 한다. 식당 주인장들은 코로나 이후로 재료값, 인건비, 임대료 등 부대 비용의 상승으로 인하여 밥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직장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인데 실직자인 내게는 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일이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버릇처럼 테이크아웃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일은 남의 일일 뿐 나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만약에 내가 실직자가 되더라도 밥값 때문에 쪼잔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주 가끔 생각만 하던 ‘만약에’가 지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고 오늘도 난 밥값을 걱정하는 쪼잔한 사람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퇴직 후 한동안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은 점심시간을 보냈다. 매일같이 주위의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녔고,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손에 들고 거리를 홀로 거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밥값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처지에 직장인들처럼 점심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제는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는 일로 점심시간을 맞이한다. 특히, 주변에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는 값싼 구내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플레이션은 필수불가결이긴 하지만 팬데믹 이후로 물가 상승률은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밥값이 이제는 좀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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