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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05. 2024

끝나지 않은 혼돈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예전 부서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퇴직 전에는 근무 지역이 달라 일 년에 불과 서너 번 밖에 볼 수 없었던 후배들이었다. 반년 만에 만나게 되었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일했던 익숙함 때문인지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듯했다. 퇴직한 선배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데 그래도 내가 회사 생활을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반가움에 악수를 하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이윽고 소주잔을 채우고 붉게 달아오른 숯불에 육즙이 넘쳐흐르는 삼겹살을 구우며 함께 했었던 지난 추억들을 소환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술자리에서 분위기와 흥에 겨워 어느 정도 거나하게 취하고 나면 그동안 속에 품고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내뱉기 마련이다. 우리의 술자리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는 자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후배들은 많은 선배들의 퇴직에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설마 퇴직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겠냐며, 머지않아 자신들에게도 들이닥칠 일이 될 것만 같다며 많이 불안해했다.


“당신들은 아직 젊고 회사에서 할 일이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불안하고 지친 후배들에게 내가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해야만 했던 대지진이 일어난 지 수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혼돈이라는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빠진 자리를 다른 사람들로 재배치했으나 이들에게도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이니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새롭게 리더가 된 사람들 역시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퇴직 기준에 해당하지만 회사에 남은 사람들을 일부 직원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개중에 일부는 타 부서로 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겨 기존에 하던 일과는 무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후배들은 마치 회사가 둘로 쪼개져 있는 것만 같다며 서글퍼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몸담아왔던 회사가 하루빨리 이 혼돈의 시기를 지나 안정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여기저기 불만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후배들의 푸념을 들으니 고요한 호수에 돌팔매질을 한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동시에 나 역시 준비되지 않은 퇴직으로 인한 혼돈과 답답한 현실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듯 후배들도 불안감에서 잘 벗어났으면 좋겠고 나 또한 이 어두운 터널을 하루빨리 지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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