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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un 20. 2024

큰딸의 운전 연수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큰딸이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운전대를 손에 잡지 못한 운전면허는 지갑에서 조용히 잠자는 장롱면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창가를 비추던 어느 날, 큰딸이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빠, 오늘 시간 있으면 운전 연수 좀 해줄 수 있어?"


큰딸의 눈에는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절실함이 엿보였다.      


“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운전을 해보게? 네가 원한다면야 아빠는 언제든지 오케이지.”


큰딸의 물음에 나는 기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소소한 여정인 큰딸의 운전 연수가 시작되었다.


첫 연수는 주말 아침, 아파트 주차장에서 시작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큰딸은 찬물을 가득 채운 텀블러 하나를 들고 빨리 운전하러 나가자며 보챘다. 이런 큰딸의 모습은 마치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에 빨리 가자며 발을 동동거리던 여섯 살 꼬맹이 시절을 연상케 했다. 차에 올라탄 큰딸은 시동을 걸기 전,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아빠가 옆에 있으니까.”     


나는 바짝 얼어있는 큰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큰딸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힘차게 울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큰딸의 본격적인 운전 연수가 시작되었다.


주차장을 도는 첫 번째 주행에서 큰딸은 당연히 몇 가지 작은 실수를 했다.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깜빡이를 켜지 않거나, 사이드미러를 보지 못하는 등, 초보 운전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실수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큰딸은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나는 큰딸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단호하게 다그치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해야지.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운전이야.”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차 안은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반복되는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잘 버티며 운전에 전념하고 있는 큰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운전 잘했어? 실수는 많이하지 않았고?”


아내도 큰딸의 첫 번째 운전 연수가 많이 궁금했는가 보다.       


“처음이라 실수도 잦았고, 아빠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어. 그래도 차는 잘 몰았어.”


“다행이네. 나 같으면 아빠한테 계속 혼나면서 운전을 배우지는 못할 거야. 그 많은 구박을 어떻게 참니?”


생각해 보니, 큰딸의 실수를 다그치기만 했지, 격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가 큰딸을 더욱 대견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큰딸의 운전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주차장을 벗어나 아파트 주변 도로를 주행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큰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고, 교차로를 통과하는 것까지 능숙하게 해냈다. 큰딸의 자신감이 늘어날수록 나의 흐뭇함은 커져만 갔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사거리에서 유턴에 성공하더니, 운전이 너무 재미있다며 크게 소리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운전 연수는 단순히 운전을 배우는 시간을 넘어, 우리 부녀가 평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의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큰딸은 운전하면서 극단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큰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때론 조언을 주고, 때론 그저 경청하며 큰딸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우리의 대화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어우러져, 따뜻한 부녀의 정을 쌓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큰딸이 첫 장거리 운전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약간의 걱정과 함께 자부심을 느꼈다. 우리는 그 길로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마을로 향했다. 도로의 상황과 교통량을 고려해 경로를 계획하고, 필요한 경우 대처할 방법을 상의했다. 출발할 때 긴장감이 역력했던 큰딸은 차츰 서울을 벗어나자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큰딸은 그 여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홀로 도전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헤이리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함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성공적인 주행을 축하했다.


큰딸에게 운전 연수를 해주는 것은 나에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운전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빠로서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다. 큰딸이 운전대를 잡고 차를 움직일 때마다, 나의 가슴은 흐뭇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큰딸이 운전 연수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나와 더 가까워진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다. 아직 혼자서 운전을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운전 연수 횟수가 늘어날수록 불안함과 긴장감은 작아져 가고 있다.


우리는 틈날 때마다 함께 운전 연수를 했다. 그 시간은 단순히 운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녀의 관계를 더 깊고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딸과 함께한 운전 연수는 나에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앞으로도 딸이 운전하면서 겪을 많은 순간 속에서, 아빠와 함께했던 그 시간이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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