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면서 행복하기
추억하는 것에는 늘 후회가 있다.
'추억'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따뜻하고 그립다. 그래서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추억의 사전적 정의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좋았던 일이든지 불행했던 일이든지 견디고 지나온다면 현재의 나는 그때를 추억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추억하는 것이 가끔은 두렵다. 현재의 내가 봤을 때 과거의 나의 선택은 언제나 아쉽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은 후회를 남긴다. 그리고 이랬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가정을 해도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기에 우리는 추억을 최대한 미화한다. 아무리 힘들었던 경험도 견디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아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건 다 추억이 미화돼서 그렇다고 말을 한다. 현재도 벅차기에 과거는 아름답게 남기고 싶은 인간의 방어기제일까?
그 전에 이 말을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한 말이다.
'과거를 떠올리면 후회 때문에 죽고 싶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 때문에 우울하니까, 소거법으로 현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동의한다. 과거는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그나마 현재가 행복하다는 말은 일리 있다. 그래서 과거랑 미래를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면서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만 만약에 현재도 불행하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때의 나는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던 과거부터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추억했을 때에는 과거의 후회로 헤어 나올 수 없다. 현재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않거나 그 추억을 왜곡해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이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 좋았던 추억이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테니깐. 찬란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반드시 후회하겠지만 현재가 불행하다면 유일하게 남은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추억하는 것에는 늘 후회가 있다. 그래서 과거를 떠올리면 후회 때문에 죽고 싶다. 그렇다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 때문에 우울하니까, 소거법으로 현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현재도 불행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건드릴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과거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는 것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추억의 화자는 나 자신이기에 가능하다. 최대한 왜곡해서 그래도 좋은 경험 했다. 그때가 좋았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지금의 자신을 미워할 것을 알기에'
그러다 가끔은 그 추억을 미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분명 안 좋은 이유로 헤어졌으면서, 상대방의 잘못이 있어서 싸웠으면서 그때 그 사람한테 더 잘해줄걸. 혹은 더 친해져 볼걸. 생각해보면 나의 잘못이 크다고 왜곡한다. 남들에게도 자신의 탓이라 말하며 상대방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다시 만나서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재확인한 후에 다시 이별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를 다시 그리워한다.
그래서 추억은 이기적이다. 가끔씩은 내가 힘들었던 기억은 빼놓고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아픈 기억마저 추억이라는 이유로 미화한다. 아니, 내가 이기적이다. 과거에는 힘들어서 빨리 현재로 오고 싶었으면서 이번에는 현재가 힘들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추억하는 것에는 반드시 후회가 있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인간을 발전시켰지만 만약이 존재하는 추억 속에 나 자신을 매몰시켰다. 한 번 추억하면 아쉬움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추억한다. 이것을 보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언제나 되돌릴 수 없다. 별것 아닌 한 장면조차 언젠가는 잊게 된다. 그리고 잊었다는 것을 분명히 애석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면서'
역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잊었다는 것에 애석하지 않기 위해 별것 아닌 한 장면조차 추억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나도 그 과거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후회할까 봐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추억한다. 그리고 추억하는 동안 늘 후회한다. 그렇게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추억하려고 애쓴다. 그 과거는 어떤 면에서 나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추억하다 보면 진심으로 행복해질 때가 있다. 순수했던 모습에 웃게 되고, 아무 생각 없이 놀았던 모습에 즐거워지며,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리워진다. 그 그리움조차 설렐 때가 있다. 그래서 후회하더라도 추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바쁜 삶 속에서 추억은 우리를 인간다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릴 때 후회하거나 위의 말처럼 과거를 잊었다가 문득 떠올랐을 때 애석하게 여기거나 인간은 어쨌든 후회한다. 그래도 전자의 후회는 그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음번에는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추억하는 것에는 늘 후회가 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추억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추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한다면 현재는 행복할까? 후회하지 않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언제가 되었든 어느 순간 반드시 떠오르게 된다. 그렇기에 현재에 후회하지 말고 과거에 후회하자. 마음껏 후회하고 지나간 과거를 밟고 일어서 현재를 살아가자. 후회는 추억에서 하자. 과거에서 하는 것이다. 현재에 후회하고 불안해하기에는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 많다.'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신은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낚시를 해주지는 않는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내 글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인생의 글쓴이는 나이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후회로 과거에 매몰되어있는 것조차 내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 불행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기에. 그래서 자신을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제일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 자신밖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불행하다고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 사실에 더 슬퍼지겠지. 결국 내가 선택한 행복의 방법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것을 알았다면 빠져나와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아직 많다.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는 많다. 내가 그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는 나의 선택인 것이다.
덧붙이는말) 지나간 일을 떠올리면서 후회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추억하는 것에는 늘 후회가 있다.'는 주제로 후회하는 데도 계속 추억하려는 이유에 대해 쓰고싶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던 중 이런 문장을 읽었죠.
'과거를 떠올리면 후회 때문에 죽고 싶고 미래는 생각하면 불안하니깐 소거법으로 현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이 말에 감명을 받았죠.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 것입니다. 그럼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인가? 그럼에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쓰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랭보> 극 중 서사인 '인생은 불행하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곳에 존재할까?'에 대한 연결 선상에 있었죠. 너무 심오한 이 주제에 대해 친구와 토론하던 중 제가 글을 쓰는 이유와 목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유토피아라 하더라도 행복은 상대적이기에 불행한 사람은 항상 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옆에 힘들어 하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정말 어렵게 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글인것 같네요. 그렇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