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뭘 해도 잘 할 거야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 "난 너를 믿어." 그러면서 뒤에 따라오는 말 "부담 갖지는 마"
내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정말 듣기 좋은 말이다.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고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담이 된다. '내가 그럴만한 실력이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며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애쓰게 된다. 난 다 할 수 있어야 하니깐, 난 완벽해야 하니깐 말이다.
나는 실수해서는 안되니깐.
중학생 때 나는 모범생이었다. 전교 1,2등을 다퉜고 전교회장까지 해봤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가장 넘쳤을 시기였다. 그런데 행복하지 못했다. 언제나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 잘할 것이다.'라는 기대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으로 나타났고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얘도 실수하네?' 이런 말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실수해서는 안 됐고 완벽해야 했다. 나는 자신이 없지만 자신 있는 척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얘는 중학생 때는 참 잘했는데...'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대학으로도 '얘가 여기밖에 못 갔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가서 그런 기대에서 벗어났을 때쯤 너무 편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때도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다. 착하고 자신들의 말에 잘 공감해주고 화도 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단순히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뿐이다. 기분 나빠도 잘 참았을 뿐이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라는 말을 했다. 나는 또 그런 기대에 맞춰 살아가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러 일을 겪고 그런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중학생 친구들의 기대에 만족시킬 자신이 없었던 나는 연락을 그만뒀고 고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에게 솔직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새로운 사람을 찾았다.
'나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지금부터의 나를 봐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정말 솔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서로를 알기에 실망하지도 않고 고민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잘 들어주는 그런 인간관계가 생겼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이제 '넌 뭘 해도 잘 될 거야.'라는 말은 들리지 않지만 나에게 해주고 있다. '난 뭘 해도 되겠는데?', '난 나를 믿어.' 이 마음속의 말들은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본인들의 위로와 응원의 말이 상대방에게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본인을 가장 잘 위로해주고 잘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깐 그 친구가 걱정된다면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 괜히 어떻게 위로해줄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냥 그렇게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된다. 진짜 힘들면 내가 먼저 너에게 손을 내밀 테니 그때는 꼭 내 옆에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