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영문학과를 지원했어요

다시 읽고 다시 쓰기 2

by 작가 이윤호

내가 영문학과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 있다.

'왜 심리학과 안 가고 영문학과 갔어?' 그때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해서.'


이것이 내가 심리학과를 안 가고 영문학과를 지원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심리학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그렇기에 논문들도 영어로 쓰여있고 어떻게 번역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에 번역본이 있더라도 영어로 된 논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영어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영어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보기 싫었다. 당장에 심리학과를 간다고 해도 내가 심리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영어는 심리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장애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을 향상하고 자신감을 얻고자 영문학과를 지원했다.


이 말에 '그러면 심리학과를 가서 영어를 따로 공부해도 됐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심리학을 바로 가지 못한 진짜 이유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처음 접한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나를 먼저 시험했고 나를 먼저 알도록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이고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 심리학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 생기고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대하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지는 날이 왔다. 그때 공부한 심리학은 나를 더 힘들게 헀지만 평생을 공부해온 심리학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을 여기에서 포기하게 되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해 온 인생 자체를 후회하며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또한 심리학이라는 공부는 필수적으로 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길게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싫어하는 영어를 극복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내 노력을 봐서라도 더 해봐도 되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싫어했던 영어도 좋아할 수 있다면 나중에 힘들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니깐 되더라. 남들보다 못할 수는 있어도 열심히 해봤다. 싫어했지만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봤다. 그 결과는 학기 성적으로 드러났다. 성적이 좋으니 재밌어졌다. 더 해보고 싶어졌다. 그 노력 끝에 나는 심리학과를 복수 전공하기로 했다. 사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 다시 쓰기) 심리학을 공부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이렇게 심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를 100퍼센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를 더 잘 알수록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어야 했지만 더 잘 숨기는 방법을 찾았다.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좋은 말만 하려고 했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긍정만 했다. 그러다 참지 못할 때가 되어도 혼자 고민했다. 결국,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힘들 때 내 생각을 말할 사람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힘들 때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나 자신이 슬펐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혼자가 되어간 것이다. 나도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의 솔직한 모습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덧붙이는 말)

내 mbti는 intp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mbti를 믿냐고 물어본다면 어느 정도 신뢰한다. 실제로 성격을 결정짓는 5 요인이 있다고 할 정도로 성격은 사실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mbti 검사가 누구나 해당하는 보편적인 특성을 나열하여 본인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믿도록 하는 바넘 효과를 일으킨다 해도 내가 성격검사 시험지에 나와있는 특성을 신뢰하여 따라 한다면 그것이 내 특성이 아니겠는가.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상처받고 남을 생각하고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실 오해임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바에는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볼까도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다시 상처받겠지만 그런 내 성격을 알기에 이제는 담담 해질 수 있다. '내가 이런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고쳐야겠다.', '사실은 상대방은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다.', '내가 오해하고 있다.'라고 자기 주문을 하면서 전에는 못하던 말들과 행동들은 지금은 용기 내서 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면 완전히 변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 나의 성격도 잠시 맞춰진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나'와 나의 '가면' 사이의 괴리감이 나를 괴롭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고민해보고 나를 위해 나의 심리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이해가 현대사회의 불규칙한 여러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 다시 쓰기) 아직 부족하지만 지금은 상처받는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더 많다. 새로운 것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했던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일이 너무 즐겁다. 지금 나는 80퍼센트 솔직한 것 같다.(20퍼센트는 다들 비밀은 있으니깐^^) 솔직한 지금이 제일 좋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았던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그 순간 더 아프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확인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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