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자존감이 더 위험하다

다시 읽고 다시 쓰기 3

by 작가 이윤호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 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주변에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는 사람들을 보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프로필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본인의 성장과 성공을 보여주는 일을 우리는 하루하루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뜻 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성공을 하고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 다시 쓰기) 과연 그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일까? 보이는 것에, 그리고 보여주는 데에 급급하여 본인에게 솔직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보면 주변 말에 자주 휩쓸리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가끔씩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본인과 성공은 멀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자기 불리 전략을 이용해 '오늘은 어쩔 수 없었어.', ' 오늘은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 '어제 잠을 못 잤더니 오늘은 잘하기 글렀네.' 등 부족한 자신을 계속해서 합리화해나간다.


=> 다시 쓰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합리화하는 말을 자주한다. 가끔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내 mbti가 intp이기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해, 나는 밖에 안 나가는 것이 맞아.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도 다른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몰라줘. 또 내가 참아야지. 등등 말이다. 본인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그렇다. 나의 가치를 왜곡한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형성된 자존감은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노력이 자존감을 요동치게 한다. 노력으로 가끔은 자존감이 높았다가 자신을 다시 돌아봤을 때 과연 내가 그 정도인가하는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한 본인에 대한 의심은 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지배적인 주장으로 여러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징'이라는 주제로 책도 나오며 그들의 가치를 기준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했다. 그렇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말은 잘못됐으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이 언제 형성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이를 거울 속의 자기라고 하는데 Gallup의 침팬지를 이용한 거울 실험에서 유래하였다. 이 실험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인식 단계에서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부모님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 자신의 기준을 내재화하게 된다. 그 후 내재화된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한 자아존중감이 형성한다. 이것은 어릴 때 형성되어 5~12세가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며 타인과 비교해 나가고 청소년기가 되면 거의 자리 잡힌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 사회적 기대에 대한 본인의 모습에 따라 다시 한번 바꾼다. 이것이 현재의 자아존중감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자아존중감이 형성되는 부분의 공통점을 확인해보면 부모님, 타인, 사회적 기대와 같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 자신만 보게 되면 확실히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수 있는데 타인과 비교하면서 주변 기대에 맞춰 계속 나를 깎아내려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걸'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는 것이 이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을 더 존중해줬다면, 나만 봤다면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을 텐데라는 기특한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하다. 남과 비교하면서 좌절하고 그 과정에서 더 성장하려고 한 것이 인간이었기에 본성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성공에 멀어질수록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앞에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잘못됐다면서 여기에서는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이 상당히 이상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과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자존감의 변화 가능성을 보지 않고 자존감을 단순히 성공의 기준으로 정해뒀다면 후자는 뭐든지 성공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자존감의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존감'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이 부분이 포인트다.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성공에 가까운 경험을 많이 겪어봐서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며 실패의 경험을 많이 겪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즉 자존감이 낮다고 해서 꼭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결법은 '브런치 작가 되기', '한국사 자격증 따기', '여행 성공적으로 다녀오기' 등 난이도에 관계없이 하나를 잡고 열심히 해서 성공의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성공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존감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기분이 느껴질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사실 성공의 경험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많은 것뿐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단정해서 본인을 틀에 가두는 나쁜 습관은 버리고 계속해서 목표를 세워 성공의 경험을 늘려 가보자. 본인을 더 사랑해주고 성공의 경험이 축적된다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가능성이 충만한 존재이기에...


=> 다시 쓰기) 성공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성공을 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어야 할까? 그 실패는 자존감을 더 낮출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성공한다고 나를 더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성공은 더 큰 성공을 갈망한다. 그렇기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본질적인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진짜 의미는 본인이 깨닫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팁이 있다면 다시 읽고 다시 써보자. 내 인생을 처음부터 되짚어가는 것이다. 유년 시절,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 시절. 차례대로 올라오다보면 내가 까먹고 있었던 나의 전성기가 있을 것이다.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기억한다면 진실을 듣고 너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친한 친구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는 것도 나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친구가 말한 것이 진정한 나의 가치는 아니다.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니 재정립도 나만이 할 수 있다.



이 부분부터는 위의 과정이 완료된 뒤에도 자존감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나는 심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알았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위의 방법을 반복했다. 이는 나의 자존감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게 해 줬다.


=> 다시 쓰기) 잘못된 방법이기에 자존감의 변동성으로 오히려 힘들었다.


중학교 시절까지 주변에서는 '넌 뭘 해도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성공의 경험도 많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았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이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사회생활에서 가끔씩 덮쳐오는 실패의 경험들이 나를 가두고 과연 내가 성공했던 경험들이 내 능력이 좋았기 때문인가 하는 의심이 나의 자존감을 요동치게 했다. 이것이 성격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존중감의 안정성'이다. 이것이 낮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정해 보인다. 자존감의 안정성이 낮은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잘 변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예민할수록 우리의 자존감은 계속해서 요동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확실한 장난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다면 자존감은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 이 부분은 '나와 같은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의 답을 제시한다. 답은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자존감이 낮지 않은 '나'이기에 자기애도 넘치고 활발했던 내가 특정 인물의 말과 행동에 누구보다 자존감이 낮은 내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주고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분명 자존감은 높은데 왜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더 우울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누군가는 장난이라고 하는 말에 진짜는 아니었을까 수백 번 되새김질해본 적도 있다. 굉장히 힘든 시간이다. 나 자신을 의심하고 누군가를 다시 의심하는 일이 반복되면 정말 지친다. 그렇게 나는 사회생활에서 도망쳐본 적도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나는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그냥 내 마음대로 생각하자. 예를 들어 A라는 인물이 B라는 말을 했다고 해보자. B라는 말은 나를 놀리는 말이었는데 장난이었던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B라는 말에 '나는 내가 정말 그런가?', '굳이 B라는 말을 했다면 장난이어도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B라고 생각하면 어때?' '내가 A에게 더 잘해줄 수 있고 B하지도 않은데'로 인식을 변화시킨다. 내가 자아존중감이 요동치는 순간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런 과정이 내재화된 후로 상처에 둔감해지고 자존감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 자아존중감의 안정성이 낮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변하기 어렵지만 의심하고 상처받는 일에 계속해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 다시 쓰기) 상처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슬픈 말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관계는 원래 그런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사실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사람이다. 그런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든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느낌이 온다. 잠시 지나치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 첫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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