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엔 보조개가 있다.
웃을 때 제일 잘 보이는 보조개는 오른쪽에 하나, 환하게 웃을 때 나타나는 크고 작은 보조개들이 다섯, 여섯 개쯤 아주 어릴 적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보조개는 피부의 죽은 세포라 말했었다. 그래서 난 여태 그런 줄만 알았다. 이를 닦으며 거울 속 나의 보조개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얘네는 죽은 세포의 자국인 걸까?'
엄마는 내가 친할머니를 닮아 보조개가 많은 거라고 했다. 할머니도 웃을 때 보조개가 한가득 보이는 얼굴이었다고. 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의 얼굴이지만 '나의 보조개는 유전이구나'를 어릴 적부터 깨달았다.
삼십 년 만에 알게 된 사실로 보조개는 죽은 세포가 아니란다. 그저 근육이 피부를 당기는 방식의 차이로 생기는 것일 뿐이라고. 그래도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여태껏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을 알고 살아온 셈이다.
난 나의 보조개가 어릴 때부터 좋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의 보조개를 발견하고 말해줄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남들은 수술해서 만든다는 보조개를 나는 다섯, 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의외로 내 얼굴 속 보조개를 발견하고 먼저 말 꺼내 준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나를 관찰해 주고 발견해 준 사람들에게 정이 갔으리라.
올리비아 핫세가 자신의 눈동자 색깔을 맞춘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수업을 했을 때, 나는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눈동자를 자세히 본 적이 있는지, 얼굴의 점은 몇 개인지, 코와 입의 모양을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며 서로를 자세히 관찰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고 발견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코에 있는 작은 점을 발견하기도, 나처럼 눈썹 밑 눈두덩이에 난 점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전에 썼던 홍점에 대한 글도 그 이유로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홍점이 좋아요)
생각보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하나하나의 생김새와 특징을 발견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보조개를 누군가도 발견하고 어여삐 여겨주는 게 나는 좋다. 사랑한다는 건 결국 상대의 작은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