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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Oct 23. 2023

짝사랑의 시작 1.

우린 시작부터 어긋났다


1년. 길고도 짧은 시간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지 1년이 되었다는 건 계절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 가을, 이맘때쯤이었으니까.

가을이면 한 번쯤을 듣는 종현의 '가을이긴 한가 봐'를 들었던 것 같고 가을바람에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 간질간질하다 동생들과 설레는 연애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게 1년 전 가을이다.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라 말하고 싶진 않다)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뿐인데 벌써 가물가물해져 버린 기억 탓에 오랜만에 다시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일기장을 펼쳤다.





9월의 어느 날.  좋아한다 말하기엔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감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속 외면했고 아니라 생각했다. '이상형도 아닌, 몇 번이나 아무렇지 않게 보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내가 왜?' 그저 두 사람의 그림체가 비슷하단 말로 시작된 친구의 우스운 말에 잠시 혹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잠시 관심을 가져본 것이라고. 그러나 추후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고 났을 때 H양은 나에게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한 마음이 아니라 이미 전부터 서서히 물들고 있었을 거라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취향이 겹치니 성격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자신의 일에 프로페셔널한 그 사람을 보며 배울 점이 많은 어른스러운 사람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많은 것이 예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쩜 나쁜 남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적신호가 울렸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감정에 대해 인정을 할 수가 없었고 관심이 있을 뿐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오래도록 맘에 품어버리는 나의 고질병을 잘 알기에 마음이 더 커져버리기 전 그만두려 한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더 정확하게는 상처받을까 시작 전부터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마음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은 더더욱.





그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거절하면 앞으로 볼 일 없겠지 싶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 남자는 나의 제안을 허락해 주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승낙하는 바람에 내가 더 생각해 보라 말릴 정도였다. 어쩌면 그 모습을 멋있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에 있어 언제나 철두철미하지만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발전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내가 본받고 싶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지난 대화들과는 다르게 다시 진중한 그에 모습이 더 좋아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숨긴다고 숨겨보았지만 이미 가장 가까운 지인 L에게 들통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니라고 핑계 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언닌 좋아하면서 왜 자꾸 외면하려고만 해? 좋아하는 사람을 정복하고 싶지 않아?"


아차. 싶었다. 온통 일기장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고선 아니라고 이제 관심 갖지 않겠다 말하는 이중적인 나의 태도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한 번도 그리 해본 적은 없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마음을 표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물한 것이 바로 빼빼로였다. (지난 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그게 나에겐 첫 용기였다. (INFP의 최고의 플러팅은 눈 마주치기, 옷 꾸며 입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나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남자의 소개팅을 알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난 내가 얼마나 그 남자를 좋아하는지를 깨달아 버렸다.





사실 소개팅인지 무엇인지 지금도 알 수는 없다. 그저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함께 늦은 밤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된 것뿐이었다. 아마 내 지인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쉬는 날 또 공부를 하는구나.' 하며 지나갈 뻔한 일이었다. 하필이면 관심이 많은 술과 바에 하필이면 여자의 촉은 특히 나의 촉은 강했다. 그 바엔 같은 사진이 올라왔고 나는 덜컹 마음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솔로 남녀가 얼마든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히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닌 그저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이 남자를 진짜 좋아하고 있구나.


그래서 속상했다. 이제 막 깨달은 내 감정을 표현하기도 전에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일 수 있겠구나. 그 이후 난 그 사람과 마주칠만한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했다. 한참 신경쓸 게 많아 정신없이 바쁜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과 연관된 일은 모두 L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엮이는 일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점점 멀어지려 애쓰는 내 계획과는 다르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 때문에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 그 사람이 나에게 텍텍거리던 어느 날. 나는 욱한 마음에 또 한 번 내 마음을 티 내고야 말았다.


나의 욱함은 그렇게 몇 번의 사건을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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