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첫 경험을 안 하면 문제야?
아끼면 똥 돼
유쾌하지 않은 말이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왜 그렇게 말해주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럼 아무 나하고도 막 해야 해?'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곤 했다.
그렇지만 그건 싫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사람을 택하고 싶으니까.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혹은 내 주변의 첫 경험은 대부분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은 타이밍에 시작된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좋았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 참으로 아이러니했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으나 이십 대의 나는 지금보다 겁도 많았고 연애보단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꽂혀있어 늘 그다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곤 했다.
"우리 집으로 갈래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킨십과 오로지 자기 위해 쓰는 수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은 너무 대놓고 치근덕대는 모습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우린 사랑은 아니었잖아?
혼전순결자도 아니고 스킨십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연인과의 관계에서 스킨십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서로가 만족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 생각하는.. 어쩜 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알아가고 마음을 주는 데에 있어 지금 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던 이십 대의 나에게 그 사람들은 어쩌면 자고 싶은 남자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던 시절, 우리는 늘 술자리로 이어졌다. 집이 멀다는 이유로 잘 빠져나오긴 했지만 어떤 공연에선 반강제로 술 한잔은 꼭 마셔야만 집에 갈 수 있는 미션 아닌 미션이 주어졌었다. 술을 마신 양이나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실수록 (나도 모르게) 풀려버리는 눈빛에 "너 술 마시면 눈빛이 달라져. 나 꼬셔?"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서야 정확히 대학 시절 교수가 나에게 남자와 있을 때 술을 마시라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다.https://brunch.co.kr/@leezacgaya/85
(평소 꼿꼿하던 사람이 흐트러지는 모습 때문이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해온다면 심쿵이라도 하겠지만 그땐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오빠들이 아무렇지 않게 친근한 척해오는 스킨십은 불편하기만 했다. (이미 유부남이었던) 연출은 함께 산책하며 대화하던 도중 은근슬쩍 우리가 말이 잘 통하니 애인 하자는 식의 농담은 건넸다. 불쾌하기만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 나이엔 그럴 수 있지." "자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 그러니 너도 좀 마음을 열 때가 됐어." "아끼면 똥 된다"
그러나 하라면 할수록 더욱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성격의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는 아무렇게나 막 하지 않을 거라고. 주변에 클럽이나 술집 혹은 여행지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을 즐기기도, 다른 의미에 자만추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고 싶을 만큼 좋아했던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마음 주기까지는 오래 걸려도 한 번 좋아하면 오래, 깊이 좋아해 버리는 탓에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리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좋은 사람도 다가왔지만 마음이 딴 곳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 헛되게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SNS에 어떤 글이 올라오자 사람들이 갈라 치기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첫 경험을 하지 못한 글쓴이의 진지한 고민이었지만 댓글엔 외모나 몸매가 문제일 것이라느니, 하자가 있다느니, 책임져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 등 비아냥 거리는 글들이 가득했다. 반대쪽에선 문제 될 것 없다고 그게 왜 나쁘냐, 경험 많은 것보다 낫다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뭐랄까.. 이미 내가 좀 치였다고 할까?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마치 성적인 경험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듯한 뉘앙스가 깔려 있어서다. 그냥 ‘아직 때가 안 됐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될 텐데, 어쩐지 ‘이상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언짢기만 하다.
'책임'이란 단어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서로 좋아서 선택한 행위에 '누가 뭘 책임져야 하는 걸까?'
물론 아직까지 이 사회에 첫 경험은 순결로 치부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시대에 안 맞는 부담스러운 프레임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이 시점에 내가 원할 때 조심할 부분은 조심하며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 주변사람들보단 조금은 나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하며 당연한 걸 안 했다는 듯 여러 의미를 담은 질문들에 답하는 것도 지겨워 말을 함구해 버린다.
무언가 천천히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음식도 뒤늦게 처음 먹어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빠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느릴 수도 있는 건데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이 정도 나이면 이걸 해야 해."라는 식의 기준을 강요받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조금 늦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의 말속에 휩쓸려 쉽게 가야 하나 싶기도, 해치워야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최근 그건 나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왕 문제아가 된 거 더더욱 '이런 나를 괜찮다 이해하고 예뻐해 줄 사람을 만나야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일 테니 후회할 일도 없겠지.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아끼면 똥 된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순간,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믿는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든 다소 고지식하고 문제아가 될지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