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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a Nov 06. 2024

주류 밖에선 브리저튼 가문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 美drama 브리저튼에 대한 단상 (2) ]


명망 높은 브리저튼 가문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

괜히 흥행작일까.

사교 시즌에 벌어지는 귀족들의 갖가지 사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든다.

사교 시즌이 돌아오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귀족 남녀들은

무도회에 참석해 탐색전을 벌인다.

상대 가문의 명성과 재력, 품행 등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제 짝을 찾는 거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낡은 구질서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게

바로 드라마의 묘미.

주인공 가문인 브리저튼가의 자제들은

외적 조건들보다 마음에 끌리는

영혼의 동반자를 선택한다.


이처럼 시대적 관례를 깨고

귀족의 체면보다 순수한 사랑을 택한

이야기가 골자이긴 하지만

이외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제한적이던 시대에

여성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며,

귀족 엘리트층을 비판하는 소리라도

언론의 순기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왕비의 이야기며,

당시 사회 문제까지 폭넓게 다뤄

매회가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가열차게 시즌 4까지 정주행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족들이 제 짝을 찾겠다고
저리도 호화롭게 사교철을 지낼 때
일반 시민들은 뭘 했을까?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삶의 영역은

귀족 사회 내부.

감독이 정해 놓은 프레임 안쪽만 들여다보다

바깥으로 시선이 돌아간 거다.


귀족 사회를 둘러싼 울타리 밖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그리고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귀족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드라마 배경은 1813년 대영제국의 섭정 시대.

동시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대다.

영국은 증기기관을 장착한 공장 가동으로

대량 생산의 시대를 맞이했고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사회 계층 간의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던 그 시대,

하층 노동자들이 도시로 대거 몰리면서

더욱 가난하고 비참한 삶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도시엔 인구 증가로 노동력이 넘쳐나니

산업 자본가들은 적은 인건비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언제든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적은 임금을 받고도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노동 시간이 평균 14~16시간.

아침 식사 15분, 점심 식사 30분,

쉬는 시간 15분이 겨우 주어졌지만,

이마저도 공장주들은

쉬지 못하게 하거나

쉴 경우 급여를 깎기도 했다.


이토록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냄새나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종일 일했으면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당시 영국 도시는 턱없이 주택이 부족했다.

지하 창고에서 수십 명이 성별 구분 없이 잠을 자거나

가축과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산업혁명 당시 관처럼 진열된 런던의 숙박 시설.


슬럼가에서조차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의 일일 숙소.                                  밧줄에 걸친 채 앉아서만 잘 수 있는 밧줄 여인숙.


영국 상류층이 산업혁명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을 때,

영국 뒷골목에선 많은 노동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브리저튼 가문을 비롯, 호화로운 귀족 사회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느라,

안중에도 없었던 울타리 너머의 일이다.


브리저튼 가문의 장녀인 다프네가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여

여왕으로부터 최고의 신붓감으로 선정됐을 때,

영국 공업 지대에선 일자리를 잃게 된

수공업자들이 면직물 공장의 기계를

망치로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 (1811-1817)    /   최고의 신붓감으로 뽑힌 다프네
러다이트 운동 (1811-1817)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공업자들이 일으킨 기계 파괴 운동.
지역적 폭동으로 확산.
열네 명의 노동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어 다음 사교철에

브리저튼 가문의 장남인 앤서니가

진실한 사랑 앞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한 면직물 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있던

17명의 소녀가 화재 사건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당시 어린 아동의 노동 착취는 매우 심각한 수준.

1819년, 1833년 영국 국회에서 제정한

공장법만 봐도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1800년대 영국 공장법]
-9살 미만 아동 고용 금지
-13세 미만 하루 9시간 노동 금지
-18세 미만 미성년자 야간작업 금지
 12시간 이상 노동 금지


1933년 영국 굴뚝 청소부로 일하던 3세 아이.


만 4세 아이들이

고작 A4용지 너비만 한 연통에 들어가

굴뚝 청소를 하다 좁은 곳에 끼거나

질식사하기도 했다.

부모가 버는 돈만으론 살기 어려우니

어린아이들까지 노동 시장에 내몰린 거다.

아이의 임금 수준은 성인의 10~20% 밖에 되지 않아

공장주들을 더 많은 아이들을 채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자본가들의 욕심과 노동자들의 빈곤,

영국 당국과 브리저튼 가문 같은 상류층의 무관심 속에

사회의 가장 약자인 어린아이들은

계속 희생되고 있었다.


사교계에 진출한 귀족 남녀들이

하인들의 극진한 수발을 받으며

꽃단장이 한창일 때,

꽃 같은 어린 생명들은

안전장치 하나 없는 사업장에서

기계 부품처럼 소모되어 갔다.


만일 귀족 사회 밖의 사람들이

브리저튼 가문을 들여다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열등한 자신의 태생을 비관하며,

귀족 사회를 동경하고 부러워했을까.

귀족들의 사랑 이야기며,

여성이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며,

다 배부른 소리라고

잔뜩 욕설을 날렸을까.


이놈의 더러운 세상,
산업 밑바닥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건 우린데
산업 혁명의 공은 왜 있는 놈들이
다 가져가는 거냐!



왕비는 제정신이냐!
귀족들만 백성이냐!
사교철에 날릴 돈 있으면
노동에 동원되는 아이들 구제하고
빵이라도 실컷 먹여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PD수첩.

물류 혁신으로 설립 13년 만에 유통업계

절대 강자로 부상한 쿠팡의 이면이 흘러나왔다.

상시적 해고 공포와 마감시간 압박에 시달리는

배송 기사들의 고충과

장시간 노동과 업무 강도 때문에

과로사한 노동자들의 사연을 듣자니,

아침 7시 전에 쿠팡 물건이 도착 안 됐다고,

투덜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브리저튼과 다를 게 없었구나.'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이 보장되는

로벳 배송의 편리함 뒤에

죽음에 몰린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으니까.


감독판에만 담기지 않았을 뿐,

브리저튼 가문이 노동자들을 위해

선의를 베풀거나 자선 사업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귀족 사회 영역에서만 살았기에,

노동자들을 무시해서가 아닌

영역 밖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노동자들의 삶은 저리도 불행한데,

자신들만 호화롭게 살던 브리저튼 가문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언제나 삶의 속성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던가.


내가 행복을 누리는 이 순간,

다른 편은 불행할 수 있으며

내게 돌아오는 혜택 때문에

다른 사람은 착취를 당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누리고 있는

나의 행복과 혜택은

언젠가 불행으로 바뀔 수 있으며,

밑바닥을 기고 있던 누군가는

전화위복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을 느낀 점으로만 끝내지 말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삶의 영역만 관심을 갔던 내가

적어도 내 편리함 너머로 누군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알았다면

나도 생각과 행동을 수정해야겠다.

아침 7시 전에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더라도

고객센터에 따지지 말아야지.

오전을 넘어 오후, 저녁에 도착해도

그럴 수 있다는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지.


(지금은 월회비가 올라 탈퇴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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