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drama 브리저튼에 대한 단상 (1) ]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단숨에 봤던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초, 영국 상류층의 사교와 문화적 활동이 활발했던 영국 리젠시 시대다.
드라마 속 온갖 치장과 화려함의 극치는
당시 영국 귀족들의 생활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매력 있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드라마를 이끄는 주체, 레이디 휘슬다운.
그녀는 런던 상류 사회의 비밀과
스캔들을 폭로하는 신문 기자인데,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쌓여 있다.
그래서 귀족들에겐 더욱 위협적인 인물.
상류 사회 꼭대기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듯
은밀한 것까지 캐내는 그녀의 예리함과 통찰력은
영국의 왕비도 주목할 정도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특권 의식에 젖어있는 귀족 엘리층들은
그녀의 글을 교양 없는 싸구려 가십거리로 취급한다.
주류에 편승코자 모두 앞에선 천박하다 평하고
뒤로는 언제 나오나 소식지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귀족들의 위선을 엿볼 수 있다.
소식지가 나오는 날엔 버선발로 마중 나가
두 눈을 번쩍이면서.
이들은 왜 뒤에서 가십에 열광하는 걸까?
첫째로, 남이 나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불편하지만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건 재밌는 일이니까.
둘째로, 서로를 비교하며 경쟁하는 귀족 사회에서
글에 드러난 남의 흠집은 내게 득이 될 수 있으니까.
문제 있는 그들보다 아무 문제없는 내가
더 고결한 귀족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이렇듯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이들의 행태 속에서
그녀의 글은 늘 논란거리가 되지만
결과적으론 귀족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귀족들의 평판을 알 수 있는 기사를 통해
자신과 경쟁 상대들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어떻게 대응하여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인지 대비할 수 있게 된 거다.
이제 그녀의 글은
귀족들의 삶에 깊게 침투하여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가 되어 간다.
상류층의 부정행위를 폭로함으로써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부당한 스캔들에는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사회적 불공정 해소에 기여한다.
그녀의 글이 점차 비주류에서 주류로 자리 잡는 과정은
곧 글의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게 바로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귀족 사회에 파고들며 점점 커지는 글의 저력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도
그녀가 숨어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대적 제약 때문이다.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한 것은
그저 가정에 머무르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뿐이었으니까.
레이디 휘슬다운은 차마 모습은 나타낼 수 없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는 건 글에서 드러낸다.
“한 시인이 말하길, 생사를 떠나 가장 고약한 여인은 글을 쓰는 여인이라 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필자가 얼마나 고약한지 보여 줘야겠네요. 저는 레이디 휘슬다운입니다.”
하지만 결국 밝혀지는 그녀의 정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흘러나오는
레이디 휘슬다운의 내레이션에 깜빡 속았다.
나이 지긋한 여사님 목소리인 데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서슴없이 비판의 칼을 들이대기에 인생의 경륜이 많은 어르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종이 위에선 거침없던 달변가가
사교 파티장 벽면에 홀로 서서 누군가 말 걸어 주길 기다리고 있던 수줍은 아가씨일 줄이야.
그녀는 귀족들의 파티장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왕비 앞에 참회한다.
그림자에 숨어 글을 썼고,
글의 권력에 중독되어 경솔히 다뤘다고.
“가십은 정보입니다.
그리고 연대감을 형성하죠.
왕비께서 허락하신다면
책임감 있게 참회하겠습니다.”
과연 왕비는 어떤 처분을 내릴까?
왕실까지 조롱하고 험담한
레이디 휘슬다운을 응징하겠다며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고 맹렬히 추격하던 왕비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냐며
왕실 모욕죄로 처리해도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왕비가 어떤 인물인지 진면모가 드러난다.
진정한 군주다운 권위를 행사한다.
“잡담이 없는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겸허해진 자세를 지켜보겠노라.”
그녀의 진심을 읽은 왕비는
그녀의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를
모두 앞에서 인정한 거다.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란, 밍밍한 삶에
양념 한 스푼 더하기며
깨어 있는 글이란, 똥과 된장도 구분 못하는
뒤통수를 후려치기와 같다는 걸 왕비는 간파한 거다.
사회에 미치는 언론의 기능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지혜로운 군주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일 수도.
어쩌면 브런치스토리에 숨어 글을 기고하는 나도
제2의 레이디 휘슬다운 아닐까.
글이란 게,
자칫하면 자뻑에 빠지기 쉽다.
누군가 내 글에 휘둘리는 걸 보면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글로써 잘못된 권력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거다.
레이디 휘슬다운도
짝사랑하는 남자가 자기를 외면하자,
글로 권력을 부린다.
사교계에서 샛별로 떠오른 인기남을
허영 가득 찬 난봉꾼으로 추락시킨 거다.
글에 신중함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