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a Oct 16. 2024

그의 글투에서 그가 보인다 (8)

- 답답한 글투 -





# Y의 글 속에서...

Y도 글을 쓴다.

자기만의 작품을 쓰는 일은 어쩌다 한 번.

대부분 작가들의 글을 수정할 때다.


어느 날은 Y가 자기가 쓴 초고라며

영상 컨셉에 맞게 다듬으라는 거다.

긴 산문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장르 불명의 글이었다.

자기도 뭔가 자기 글이 미심쩍었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 검증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할 일은

출판 글을 영상 글투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판도라 행성에선 나비어를 써야 되듯

영상에선 영상 언어를 써야 돼서

손을 봐야 했다.


보아하니 Y가 준 글을 그대로 영상에 올렸다가는

영상 따로, 글 따로 될 판이었다.

영상에 섞이지 않는 글투였다.


먼저는 Y의 글 세계를 이해해야

영상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에,

먼저 그가 전하려는 글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글이 어떤 그림으로

떠오르는지 머릿속에 그려봤다.


주제의 윤곽은 잡혔으나

잘 명시화되지 않았다.

서사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이

자연스레 흘러가야 되는데

중간중간 뚝뚝 끊겼다.

왜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나 봤더니

이야기 방식의 문제였다.


이걸 뭘로 설명해야지?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할 말 다 한 거 같은데,

돌아서면 다 안 한 거 같은

찝찝한 느낌.


분명 다 싸고 나왔는데

나와서는 다 안 싼 느낌.


Y의 글은

말을 하고는 있는데

온전히 마무리 짓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할 말을

앞에서 다 하지 못하고

조금 남겨 놨다가

그걸 뒤에 가서 하고 있는 거다.


말들이 온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다.


이건 이거다라고

정확히 말 못 하고

에둘러서 말하는

글투가 너무 답답했다.


왜 말을 못 해!
이 남자가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이런 식이면 영상 편집자도 속 터질 일이다.

애매모호한 글에 어떤 그림을 붙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대화법으로 치면 직설법이다.

고쳐 놓고 보니

일단 내 속이 시원했다.

그림도 더 잘 떠올랐다.

사실, 수정 작업 내내

Y 맘에 들지 안 들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친 대본을

Y의 메일로 보냈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허허허허…

실소가 나왔다.

이전 07화 그의 글투에서 그가 보인다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