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한 글투 -
# Y의 글 속에서...
Y도 글을 쓴다.
자기만의 작품을 쓰는 일은 어쩌다 한 번.
대부분 작가들의 글을 수정할 때다.
어느 날은 Y가 자기가 쓴 초고라며
영상 컨셉에 맞게 다듬으라는 거다.
긴 산문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장르 불명의 글이었다.
자기도 뭔가 자기 글이 미심쩍었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 검증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할 일은
출판 글을 영상 글투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판도라 행성에선 나비어를 써야 되듯
영상에선 영상 언어를 써야 돼서
손을 봐야 했다.
보아하니 Y가 준 글을 그대로 영상에 올렸다가는
영상 따로, 글 따로 될 판이었다.
영상에 섞이지 않는 글투였다.
먼저는 Y의 글 세계를 이해해야
영상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에,
먼저 그가 전하려는 글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글이 어떤 그림으로
떠오르는지 머릿속에 그려봤다.
주제의 윤곽은 잡혔으나
잘 명시화되지 않았다.
서사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이
자연스레 흘러가야 되는데
중간중간 뚝뚝 끊겼다.
왜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나 봤더니
이야기 방식의 문제였다.
이걸 뭘로 설명해야지?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할 말 다 한 거 같은데,
돌아서면 다 안 한 거 같은
찝찝한 느낌.
분명 다 싸고 나왔는데
나와서는 다 안 싼 느낌.
Y의 글은
말을 하고는 있는데
온전히 마무리 짓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할 말을
앞에서 다 하지 못하고
조금 남겨 놨다가
그걸 뒤에 가서 하고 있는 거다.
말들이 온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다.
이건 이거다라고
정확히 말 못 하고
에둘러서 말하는
글투가 너무 답답했다.
왜 말을 못 해!
이 남자가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이런 식이면 영상 편집자도 속 터질 일이다.
애매모호한 글에 어떤 그림을 붙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대화법으로 치면 직설법이다.
고쳐 놓고 보니
일단 내 속이 시원했다.
그림도 더 잘 떠올랐다.
사실, 수정 작업 내내
Y 맘에 들지 안 들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친 대본을
Y의 메일로 보냈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허허허허…
실소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