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일을 잘 해내는 것으로 나를 설명하기 시작했을까. 잘하고 있는 날에는 그래도 오늘의 나는 괜찮은 사람 같았고,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날에는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선택’하기보다 일을 통해 나를 ‘지탱’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파도, 지쳐도,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는 말로 나를 다시 일 앞으로 밀어 넣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았고,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일 말고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책임이 늘어날수록 나는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 버티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된 것처럼.
하지만 사실 나는 늘, 자유를 온몸으로 외쳤다. 나는 억압보다는 자유에 가까운 사람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때 가장 나다웠다. 책임감과 자유는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책임감만 보고 그 안에 있는 자유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일로서, 관계로서 나를 규정하고 얽매는 순간,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반복되니 지칠 만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두렵기 때문에 나는 바쁘기를 택했다. 바쁘면 덜 느껴도 되었고, 바쁘면 덜 생각해도 되었고, 무엇보다 ‘그래도 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일은 어느 순간부터 목표가 아니라 방패가 되어 있었다는 걸. 나를 향한 질문을 막아주는 대신, 나 자신에게서도 나를 가려버리는 방패.
아직 나는 일을 내려놓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버티는 쪽을 먼저 선택하고, 여전히 나보다 일을 앞세운다. 나는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해 일을 붙잡고 있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이유를 모른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이제는 일을 붙잡으며 나를 증명해 온 이 지난한 싸움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닐까.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방식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