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살아온 이유

by 이지원

나는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왔다. 혼자 생계를 일궈야 하다는 생각에 벅차고 고통스러워서 더 그렇게 살아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20대부터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와 빵을 굽고 음료를 내렸고, 호주에서는 농장에서 일도 해보고,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오피스 청소와 세컨드숍 일도 했다. 공항에 처음 생기는 영화관 오픈 멤버로 일했고, 면세점 온라인팀에서는 50개가 넘는 브랜드를 관리했다. 하나투어 패키지 고객을 위한 세팅을 했고, 공항과 제주도에서도 근무하며 여러 번의 오픈 매장을 함께 자리 잡게 했다. 이후에는 종합 심리 기업에서 CS관리로 시작해 B2B 사업과 입찰, PT를 경험하며 파트장을 맡기도 했고, 지금은 웰니스 카페와 갤러리를 공간 디렉터로서 총괄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경험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어디에 놓이든 빠르게 이해하고, 사람과 구조를 읽고, 몸을 먼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성실함은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현실적인 자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르바이트로 일할 때도 늘 주인의식을 가지고 움직였다.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기보다는, 이 공간이 조금 더 잘 굴러가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규직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를 더 편하게 느꼈다. 그게 나를 자유롭게 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일하더라도 나를 통제하기보다 신뢰해 주는 상사들과 잘 맞았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가장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나를 증명하려는 마음이 앞서 관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렇게 부딪히는 관계들을 하나씩 겪으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일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일의 일부라는 것을. 그 뒤로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 해내는 것만큼, 함께 일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팀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경험들이 쌓였고, 그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일을 하며, 더 나의 내면을 채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요가와 명상으로 이어졌다. 나의 사유와 철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바라보는 일, 요가와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으로서의 시간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늘 쉼 없이 달리다가도 소진이 오면 그 자리를 쉬는 대신 다른 무언가로 채워왔다.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식으로. 그래서 돌아보면 나는 한 번도 완전히 쉰 적 없이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멈추는 걸 그렇게 무서워했던 이유는. 멈추는 순간, 아무 역할도 없고 아무 성과도 없는 나와 마주하게 될까 봐. 일을 하고 있을 때만 나는 설명 가능한 사람이었고, 바쁘게 움직일 때만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목표라기보다 기댈 수 있는 무언가로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여전히 나보다 일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멈추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 멈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아주 천천히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오늘은 조금 덜 해내도 괜찮다고.


이렇게 나를 돌이켜보며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품어왔던 생각과 좌절,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삶의 무게가 사실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방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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