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었어

by 벼루

대학원 졸업논문을 쓸 때 거의 마무리가 된 시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제 정말 다 끝났구나 싶었던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허탈함과 막막함 그 자체였다. 논문을 다시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오류는 끊임없이 발견되었고 아무리 고쳐 나가도 수정에는 끝이 없었다.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끝이 있는 터널인지,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나날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무력함은 서서히 나 자신을 잠식해 나갔다. 논문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능력도 되지 않는데 잘난 체하며 섣불리 학문의 길에 발을 들였다가 호되게 혼나고 있구나 싶더라.


처음엔 논문을 잘 쓰고 싶었지만, 이후에는 그냥 완성만 하자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렇게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보낸 수개월.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 없이 쏟아 보자, 시간 안에 완성만이라도 해보자는 목표를 향해 그저 맹목적으로 달렸다. 논문은 무사히 심사를 통과했고, 나는 대학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해방감이 앞섰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드디어 빠져나왔구나 하고.


하지만 반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맹목적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무엇도 잘못된 것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모든 것이 잘못된 것만 같았고 모든 것이 불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우울감이 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제2의 사춘기를 겪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을 상실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더라.


'원래 계획대로 공부를 더 이어가야 하나? 내가 그럴 능력이 되나? 괜히 여기서 더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가 나중에 더 크게 후회하면 어떡하지? 전공을 살려서 일하려고 했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전공만 붙잡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너무 전공에만 매달려온 건 아닐까? 사실 내 길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닐까?'


마치 자기 꼬리를 쫓아 뱅글뱅글 도는 강아지처럼 답이 없는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렵사리 결론을 내렸다. '돈을 벌어보자'라고. 전공을 살릴 자신이 없다면 더 늦게 전에 빨리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그러나 전공을 버리고 돈을 벌자는 선택지를 택한 내 앞에 놓인 미래는 마냥 빛나지만은 않았다. 나이는 벌써 20대 후반이지만 지금까지 전공 공부만 해왔기에 일반적으로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무얼 고려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준비과정을 따라 했다.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 강의를 듣고,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책을 사서 읽고, 토익 점수를 만들기 위해 시험을 보러 다녔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돈 그 자체가 목표였기에 직무와 산업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단지 연봉 조건만 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렸다. 하지만 번번이 들려오는 탈락 소식은 나를 계속 갉아먹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세상에 나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까, 남들은 취업도 진학도 잘만 하는데, 다들 자기만의 자리를 잘 찾아 가는데 왜 나만 이렇게 제자리에 있는 걸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어디 소속된 곳도 없이 계속해서 맛보는 실패는 끊임없는 자기부정, 불안, 우울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졸업 후 계속되는 공백기에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날들이 힘겨웠다. 곧 은퇴를 앞둔 부모님, 안정적인 직장에 결혼까지 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언니. 부모님께서는 "네가 취업만 하면 이제 집에는 걱정거리가 없다"라는 말씀을 종종 농담처럼 하시곤 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정했던 내게 가족들의 눈치는 종종 "너만 없으면 우리 집엔 걱정거리가 없다"로 들리기도 했으니까.


어느 순간 살아간다는 게 참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눈을 뜨면 희망찬 내일이 아니라 또다시 힘겹게 버텨야 하는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이렇게 많은 날을 버텨야 할지 아득할 따름이라, 사소한 일에도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쉽게 들곤 했다. 나의 죽음에 슬퍼하는 얼굴들이 그려졌지만, 타인이 슬퍼하지 않기 위해 살아있는 인생이란 또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 날은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쉽게 자주 구체적으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나?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나도 잘 살고 싶은 것인데.


이러다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큰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불안과 우울에 대해 말하자니 또다시 많은 망설임이 들었다. 나의 우울이 타인에게 전염되면 어떡하지? 내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 사람이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다들 자신의 일로도 충분히 벅차고 힘들 텐데, 다른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을 텐데.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려웠다. 엄마는 강인한 사람이라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기에. 이전에도 내가 넌지시 힘들다고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산다", "네가 너무 나약한 것이다. 마음을 좀 강하게 먹어라"하고 말씀하셨으니까.


누군가에게 우울을 고백하는 일만큼 힘겨운 일도 없다. 하지만 그날은 용기를 내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나 정말 힘들다고, 가끔은 무서운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섭다고, 나를 좀 붙잡아 달라고.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나를 꼭 안아 주셨다. 엄마의 품 안이 숨 막히게 따뜻해서 나는 한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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