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소인수분해.
내가 참 좋아했던 단원
커다랗고 복잡한 숫자가 점점 작아지는 짜릿한 쾌감
수업시간의 지루함을 날리기엔 딱이었다.
학원에서 중학수학을 배우고 온 첫날. 아들은 화가 나 있었다.
"왜 굳이 방학에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해? 완전 머리 아파!"
수학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아이. 중학교엔 왜 가야 하냐며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 정말 답답하다. 내가 다시 다닐 수도 없고. 그냥 수학시간엔 눈뜨고 앉아만 있으라고 해야 하나?'
시작도 전에 뒤처지는 것 같아서 아이를 보면서 조바심이 난다.
롤러장이 한창 유행일 때, 난 그 문화를 즐기지 못했다. 왜? 롤러를 못 타니까. 자꾸만 넘어지니 아프고, 무서웠다. 동생은 몇 번 넘어지더니 혼자 터득해서 잘만 타던데 나는 아무리 배워도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겨울철 낭만인 스케이트도 나에게는 그림의 떡. 노력해도 잘 안되니 자꾸만 피하고 싶었다.
"엄마, 나도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싶어요."
"갑자기?"
"친구들이 그러는데 재밌대요. 나도 해보고 싶어요."
내가 못하니 아이를 시킬 생각도 없었다. 뭐든 의욕적으로 도전하는 딸, 친구들이 하는 건 궁금하고 따라 해보고 싶은 아이.
인라인을 한참 배우더니 이번 방학엔 아이스링크장을 가고 싶단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추울 텐데, 괜찮을까?'
괜찮다. 너무 괜찮다. 매일 아침 콧노래를 부르며 일어니는 아이. 저녁에 퇴근하고 가면 그날 배운 내용을 선보이며 한참을 설명을 한다. 짧은 특강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가서 보고 싶어 딸과 동행했다.
미끄러운 빙판에서 유유히 앞으로 나가는 딸. 표정에서 자신감이 가득했다.
'와~ 대단하다!'
나는 못했던 일이라 그런지 더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이래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구나! 내가 해낸 것보다 아이가 해낸 것이 더 기쁘고, 내가 실패하는 것보다 아이가 실패하는 것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뭔지 알겠다.
빙상장 한편에는 자꾸만 넘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분명 잘하고 싶을 텐데. 얼마나 답답할까?'
모든 아이가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수학을 못한다고 한심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못하는 스케이트를 잘 탄다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아이들 모두 각기 다른 인격체이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다르다. 비교하지 말자.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