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녹이는 마음.
#1. 감사합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여행 불참 소식.
'아이들만 데리고 해외에 갈 수 있을까?'
불안한 내 마음을 들키지 말아야 했건만, 자꾸만 새어 나오는 마음에 여행 첫날부터 실수 투성이었다.
"엄마, 택시 어디서 타요?"
"잠시만, 내 핸드폰이 어디 있지?"
공항으로 가는 새벽, 예약한 택시를 찾으려다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란 마음에 애들도 캐리어도 놔두고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핸드폰을 들고 내려오니 택시를 이미 찾은 아이들.
"손님, 연락이 안 돼서 그냥 갈 뻔했어요."
"죄송해요. 제가 핸드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요."
"고마워, 얘들아. 너네 덕분에 택시 안 놓쳤다."
아이들이 탑승장소에 캐리어를 들고 서있어서 택시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새벽부터 식은땀이 났다. 배테랑 택시 기사님 덕분에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했다.
#2. 감사합니다.
여행 첫날, 다이칸보 전망대에 오르는 길이 온통 빙판길이었다. 여행 와서 눈을 보게 될 줄이야! 해가 뜨니 얼음이 살짝 녹아서 반질반질했다. 한걸음 떼기도 불안 불안한데 그 와중에 미끌거린다며 신이 난 아이들. 빙판길을 뛰어오르고 장난치고 넘어지고 날리였다.
'여행 첫날부터 다치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에 애들을 쫓아가다가 그대로 꽈당!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혀보긴 처음이다.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광대와 안경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엄마, 괜찮아요? 그러게 조심했어야죠!"
내가 했던 잔소리를 그대로 전해 들으니 부끄러웠다. 눈과 얼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 안경이 심하게 휘어지긴 했어도 깨지진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광대뼈가 얼얼하고 안경이 삐뚤어져서 머리가 아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애들만 놓고 버스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정신없이 일행을 따라다니며 애들 사진 찍어주고 내려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상점에 들렀다.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미는 내 손을 보더니 점원이 걱정스레 물었다.
"다이죠브? 괜찮아요?"
내려다보니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아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여행 오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우스꽝스럽게 휘어진 안경을 쓰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심난했다.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점원이 밴드 2개를 들고 오셨다. 조용히 손에 쥐어 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분께 어떤 말도 전할 수 없었지만 정말 감사했다. 밴드 2개에 담긴 마음이 따뜻해서 힘낼 수 있었다. 조금 우스운 꼴이면 어떤가. 넘어질 수도 있지. 날 위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3. 감사합니다.
여행 셋째 날. 다음 목적지로 가던 버스 안에서 코피가 터진 딸. 하얀 외투에 떨어진 붉은 피를 보니 머리가 하얘졌다.
"휴지, 휴지 어딨지?"
분명 챙겨 왔는데 당황하니 보이질 않는다. 그때 달려와서 휴지를 건네주는 가이드님.
"아, 감사해요."
휴지로 코를 지혈하며 딸을 보니 옷은 이미 붉게 물들고 손이며 얼굴이며 피로 얼룩졌다.
'이제 곧 내려야 하는데 어쩌면 좋지?'
난감해하던 우리에게 물티슈를 건네주신 아주머니.
"이거 써요."
물티슈만 주고 사라지신 통에 얼굴도 못 봤다. 급한 마음에 물티슈로 얼굴도, 손도, 외투도 닦았다. 덕분에 버스에서 내릴 땐 그럭저럭 괜찮아진 몰골.
"괜찮아요? 우리 애도 어릴 때 코피 많이 났는데, 놀랐겠네."
"버스 안이 너무 건조해서 그래. 물 많이 마셔."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여행하는 게 불편할 줄 알았는데, 도와주시고 걱정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든든했다.
감사한 마음들 덕분에 남편 없이도 아이들과 3박 4일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버겁지만 함께 나누는 마음이 있다면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 이번 겨울엔 내가 받은 따뜻한 마음들을 주변에 나누며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