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

행복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by 까만곰

우리 집에 도둑이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고, 지금도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라 믿었기에 애지중지 아끼며 곁에 두었건만...

그게 우리의 시간을 몽땅 빼앗아 갈 줄이야ㅠ


"아들, 이제 자야지."

"잠시만요."


"아들, 밥 먹어~ "

"네..."


"아들, 학원 가야지~"

"아 맞다, 벌써 시간이..."


하루 종일 책 속에서 허우적대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책을 다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게임 보단 그래도 책이 낫겠지.'

'뭐라도 읽으면 공부가 될지도 몰라.'

애써 괜찮은 이유를 찾아보지만 답답한 마음에 자꾸만 목소리가 높아진다.

공부도 학교도 싫어하는 아이라서 책이라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했다. 내 바람대로 책을 곁에 두는 아이가 되었는데 나는 왜 화가 나는 걸까? 뭐가 못마땅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가 책을 읽으면 공부 잘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아이가 될 거라는 바람이 있었나 보다. 이젠 방문까지 꾹 닫고 들어가 틀어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오랜만에 거실에 나온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도대체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이거 엄청 재밌어요. 이 작가가 무서운 이야기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다른 글도 잘 써요!"

평소엔 대답도 잘 안 하더니 작가 자랑은 엄청나게 한다. 글이 재밌긴 한가 보다.


<인생 박물관> 표지에 작가 이름을 보니 김동식.

그 베스트셀러 작가님? 표지에 발목이 덩그러니 잘려있는 그림이 오싹했던 회색인간!


외출하는 길, 아들이 보던 책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니 한 번 읽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가방에 넣었다. 지하철에 서서 책장을 넘겼다.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 그런지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빨랐다. 알듯 말 듯 궁금증을 자아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뒤에서 밝혀지는 뭉클한 진실! 작가님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숨겨진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어느덧 지하철에 자리가 나서 앉아서 책을 읽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누군가와 한참을 이야기한다. 친구를 그리워하며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신부에게 지금 그 친구가 와 있다고 하는데... 그 다음장을 넘기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휴지도 없는데 여기서 눈물이 나다니;;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문장과 이야기를 읽는데 이렇게 감정이 쏟아진다니! 아들이 책에 빠질만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 세바시에 나온 김동식 작가님 영상을 시청했다. 겸손하고 차분하고 뭔가 엉뚱한 작가님. 꽃다운 20대를 집과 공장을 오가며 단조롭게 사셨다는 말에 마음이 서늘했다. 그런데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지? 인터넷 게시판 릴레이 글쓰기가 시작이었다고 한다. 쓰다 보니 온전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갈증이 생기고, 나중엔 댓글을 보는 재미로 글을 쓰셨다고 했다.


20대 내내 안 할 이유만 찾아서 기회를 거절하고 현실에 안주했던 작가님은 한 번의 인터뷰 승낙으로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되셨다고 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도 안 할 이유가 없다면 그냥 한 번 해보세요."

이 말이 왜 그렇게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대단한 용기나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고, 누구나 도전해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에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행복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고, 행복의 기준은 '나'라고 말하는 작가님을 보며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에게 책은 시간도둑이 아니라 영감을 주고 행복을 주는 고마운 존재일 수도... 이제 시간도둑이라고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아들 덕에 재밌는 책 많이 읽고 있으니 이참에 내 독서의 폭도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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