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갑자기 물어본다고?
아들이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된 나의 비밀.
상담센터에 가고, 소아정신과에 다니면서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 겁이 났다.
'누가 우리 아이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면 어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 아냐?'
학기 초 상담 가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릴 때도, 친정 엄마한테 도움을 요청할 때도 비밀 유지를 부탁드렸다. 혹시나 아이 귀에 들어가서 상처받고 위축될까 봐, 다른 친구들이 아이의 약점을 잡고 놀릴까 봐 두려웠다.
나의 노력 덕분인지, 주변 사람들의 협조 덕분인지 아이는 별생각 없이 매달 병원에 다니고, 매주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나도 좀 살만해지고 아이도 좀 나아지니 마음이 많이 놓였나 보다. 우리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이젠 비밀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에게만은 ADHD에 대해 이야기해 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집에 둘만 있을 기회를 노려 몇 번이고 말을 꺼내보려 했지만 딴소리만 하다가 실패.
어떻게 하면 아들이 자신의 상태에 낙담하고 충격받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책이랑 영상 보면서 대사도 써보고 혼자 인형 앉혀놓고 연습도 했다. 연습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입 떼기가 어려워졌다. 직면하기 두려운 마음에 조금만 더 모른 척 지내자고 미루고 미뤘다.
"엄마, 이 약은 왜 먹는 거예요?"
"어?"
아침에 습관적으로 약을 먹던 아이가 물었다. 처음이다, 아들이 이유를 물어본 건! 지금 말해주면 딱 좋겠는데... 하필 호기심 많은 참견쟁이 동생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잖아. 처음에 병원 교수님이 설명해 주셨던 거 기억 안 나?"
"아, 그렇구나. 잊었어."
"그거 영양제야, 뇌 영양제."
당황한 남편이 급하게 달려오며 상황을 수습했다. 혹시라도 철없는 동생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까 봐 걱정돼서 급하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병원에 갔다가 감각통합 수업을 받으러 간 센터에서 악을 쓰고 우는 아이를 만났다. 수업받기 싫다고 우는 소리가 꽤나 듣기 버거웠나 보다. 조금은 거친 목소리로 짜증을 내는 아들.
"아, 피곤한데 쟤 때문에 정신없어요! 왜 저래 진짜?"
"우는 소리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지. 어른들도 그래. 그래도 우리가 좀 이해해 주자. 저 아이도 오죽 힘들면 저러겠어.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
"아,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 심하잖아요."
"그렇지. 저 애도 좀 크면 안 그러지 않을까? 너 봐봐. 얼마나 좋아졌어. 그렇게 울고 화내더니 이젠 큰소리도 잘 안내잖아."
"저도 그랬어요?"
"응, 소리치고 우는 걸로는 1등이었을걸."
"아, 죄송해요. 엄마아빠 힘들었겠네요."
"괜찮아. 이렇게 잘 크고 있는데."
"크면 다 좋아져요?"
"가지고 있는 문제마다 달라. 크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것도 있고,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있고, 좋아지지 않는 것도 있지."
"나는 어떤 문제인데요?"
"너? 시간관리가 어렵고 집중 잘 안 되는 거?"
"나 ADHD 같은 거예요?"
"어? 어. 그렇지."
"아, 그렇구나."
뭐지 이 무미건조한 반응은? 훅 치고 들어와서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요즘 주의력이 부족한 ADHD는 정말 흔해. 엄마랑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들이랑 작가분들 중에서도 많아. 의사 선생님들도 본인이 ADHD라고 방송에서 나와서 말씀하시던데."
"알아요."
"그래도 ADHD는 치료받으면서 연습하면 많이 좋아진대. 어른이 되면 뇌가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지기도 하고. 아빠 봐봐. 지금 회사도 잘 다니고 동료들이랑 잘 지내잖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아?"
"와~ 아빠도? 유전자 진짜 최강이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렇지... 대신 내가 가진 어려움을 커버해 줄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거지. 시간관리나 메모, 습관 같은 걸로. 엄마도 매번 깜박하니까 메모하잖아."
"그건 그렇죠."
"ADHD가 강점도 많아. 몰입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뇌지. 남들은 너처럼 그렇게 오래 책보라고 하면 질려서 못할걸. 넌 시간 가는 게 잘 안 느껴지니까 하나를 오래 할 수 있는 거잖아."
"맞네."
"빌게이츠나 일론머스크 같은 사람도 ADHD래."
"오~ 슈퍼 파워!"
아들이랑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봤다. 자기가 ADHD라는 사실을 알면 엄청 충격받아서 침울해하거나, 억울하다면서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가 대견하다.
나에게도 조금 놀랐다.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음이 평온하다니. 우리를 그렇게나 힘들게 했던 비밀이 이제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도와주는 발판이 되었다.
"엄마는 너 걱정 별로 안 해. 잘 클 거라고 생각해."
"나도 걱정 안 해요. 잘 크겠죠."
"그래도 힘들면 말하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