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총회가 불러온 폭풍
"아버님, 어머님! 아이들에게 사랑을 자주 표현하세요. 애들은 콕 짚어서 말해줘야 알아요."
학부모 총회에 오신 부모님들께 부탁드렸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잔소리도 하고 꾸지람도 하는 건데,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기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해요."
"말썽 피우고 공부 안 하고 동생이랑 싸워도, 그래도 널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당연히 알겠지 싶어서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몰라요."
매번 학급경영계획만 잔뜩 이야기하던 자리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학부모 총회 전날 아이들이 내게 한 부탁 때문이었을까?
"선생님, 내일 저희 엄마 아빠 오면 꼭 좀 이야기해 주세요. 저 좀 많이 사랑해 달라고. 제가 부모님을 힘들게만 한대요."
자주 마음을 표현해 달라는 내 부탁에 몇몇 분들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오늘만은 아이들이 사랑 가득 받고 마음을 포근히 채우기를 바랐다.
다음날, 하굣길 알림장 검사를 하는데 구석에 적힌 한 마디. "00아, 사랑해"
엄마가 자기 때문에 매일 힘들어한다고 속상해했던 그 아이의 노트였다. 학부모 총회에서 유난히 떨리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 짧은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웠다. 어머니가 마음을 내어 주셨구나!
어머니의 메모 덕분에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는 내게 걸려온 딸의 전화.
"엄마, 왜 학부모 총회 안 왔어? 다른 엄마들은 다 왔던데. 엄마는 일이 그렇게 중요해?"
다짜고짜 쏘아붙이는 딸의 목소리. 당황스러웠다. 매번 총회는 학교 수업이랑 일정이 겹쳐서 참석을 못하는 대신 공개수업과 상담은 꼬박꼬박 참여했었다. 그동안은 딸도 별 말이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나도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내가 쓴 배움 공책이랑 주제 글쓰기 노트. 선생님이 엄마들 오시면 보여주신다고 했단 말이야. 오늘 엄마아빠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썼다고. 선물도 준비했는데. 왜 안 왔어? 학부모 총회에는 한 번도 안 왔잖아. 엄마 학교만 중요하고 나는 중요하지 않아? 엄만 바보야!"
30분 동안 이어진 딸의 울음을 들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만 울라고 해야 하나? 뭘 이런 걸 가지고 우냐고 말해? 그래도 이렇게 까지 화내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느라 못 간걸 이렇게까지 화를 낼 건 뭐람. 마음속에서 울리는 나를 방어하는 목소리를 깨닫고 나니 딸에게 더 미안해졌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딸이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엔 휴가라도 내서 학교에 갔어야 했다. 좀 서운해하다 말겠지 쉽게 생각했다. 나도 일하니까, 이제 컸으니까 이해하겠지 싶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우리 반 학부모님들에겐 마음을 표현하라고 말해놓곤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진 전화 통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울고 있는 딸을 꼭 안아줬다. 울먹거리면서 안기는 딸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안고만 있었다. 딸이 진정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다. 허기진 마음을 달래줄 빵을 사러 나가서도 뾰로통한 딸. 집에 돌아와서 빵을 함께 먹고 나서야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일이 더 중요할리가 없지. 3월이라 일이 너무 많아서 엄마가 못 가봤네. 네가 우는 소리 들으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내년엔 꼭 시간 내볼게. 엄마가 안되면 아빠라도 갈 수 있냐고 물어볼게."
"알았어.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할까? 선생님이 엄마가 총회에 안 왔다고 절대 화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생님 딸들은 1학년 3학년인데 둘 다 안 울었대. 난 언니인데도 자꾸 울음이 나와. 나 바보인가 봐."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감수성이 풍부한 거 아닐까? 슬프면 눈물이 날 수 있지. 충분히 서운할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 속상한데 안 그런 척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런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한 시간 만에 찾아온 딸과의 평화. 내가 해보니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더 큰 폭풍우를 막으려면 어려워도 불편해도 서로의 마음을 내어놓고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일은 서로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