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촌과 함께하는 예술 공간, 싱가포르

by 정물루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혹은 도시)로 떠오르는 곳은 흔히 두바이, 홍콩, 싱가포르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일상적으로 공존한다는 점이다. 다만 문화가 ‘섞여 있는 것’과, 그 문화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2026년 1월 말 열리는 Singapore Art Week는 싱가포르가 다문화를 어떻게 문화정책과 예술 생태계 안에서 구조화해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싱가포르 아트 위크는 매년 1월 열리는 국가 차원의 아트 시즌으로, 국공립 미술관, 비영리 기관, 독립 공간, 상업 갤러리까지 폭넓은 주체들이 참여한다.


싱가포르 예술 생태계의 특징은 단순히 전시나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요 행사와 제도는 자국 작가만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조망하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각국 단위로 분절되기 쉬운 동남아시아 예술 신(scene)들이 싱가포르를 매개로 교차하고 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싱가포르 아트 위크 기간 중 열리는 전시 <차팔랑(Chapalang)>은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싱글리시와 호키엔어에서 유래한 ‘뒤섞임’을 뜻하는 단어를 전시 주제로 삼아,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작가들을 함께 소개한다. 이 전시는 동남아시아 창작자들이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기술을 어떻게 일상적,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지를 탐구한다. 큐레이터들은 국가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다루는 창작 태도에서 유사한 지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상업적 측면에서도 싱가포르는 지역 허브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아트 위크의 핵심 행사인 아트페어 Art SG는 2026년부터 동남아시아 특화 페어였던 S.E.A. Focus를 통합해 운영된다. 올해 행사에는 약 30개국에서 106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미술의 상업적 거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와 동시에, 실험적이고 비물질적인 작업을 중심으로 움직여온 독립 예술 공간의 위기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지역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작가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관객이 사유와 공감을 경험할 수 있는 비상업적 공간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화려하고 상업적인 아트 페어만으로는 도시의 예술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는다. 계속적으로 새로운 예술가들이 모여 실험하고 실패하며 소통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비공식적인 ‘아지트형 인프라’가 함께 작동할 때, 더 많은 창작자들이 이 도시로 유입될 것이다. 물론 그 문화적 밀도 또한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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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artnewspaper.com/2026/01/20/singapore-cements-its-role-as-a-hub-for-art-and-artists-in-southeas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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