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네토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은 독일의 슈톨렌이 대표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 입맛에는 별로지만 슈톨렌은 연말과 크리스마스에 떠오르는 대표 아이템 중 하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라 굳이 사 먹지는 않았다.
두바이몰에서 잇탈리(Eataly)라는 이탈리언 레스토랑을 지나가다가 너무 예쁜 틴(tin)들이 쌓여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고 들어가 물어보니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빵이라고 한다. 파네토네(panettone)라는 이 빵은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 빵이라고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새해에 가족들, 친구들 파티에서 다 같이 나눠 먹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파네토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밀라노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파네토네라는 단어는 작은 빵 덩어리인 파네토(panetto)에서 유래했다. 접미사 -one이 붙으면 '큰 빵'으로 의미가 바뀐다.
파네토네의 기원은 고대 로마인들이 꿀을 넣어 발효시킨 빵에 단맛을 내고 로마 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찰스 5세 시대에 교황과 황제의 개인 요리사였던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쓴 요리책에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파네토네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증거는 1599년 파비아 보로메오 대학의 비용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해 12월 23일 점심 식사로 제공된 코스 목록에 크리스마스 비용으로 버터 5 파운드, 건포도 2 파운드, 향신료 3 온스를 제빵사에게 주어 크리스마스 날 대학생들에게 줄 13개의 '빵'을 만들도록 주문했다. 파네토네와 크리스마스에 대한 첫 기록은 18세기 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베리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그것을 팬드톤(럭셔리한 빵)이라 칭했다.
그러니까 파네토네는 스윗, 럭셔리, 로맨틱, 나눔의 빵이다. 이탈리언들은 빵 하나도 이렇게 어딘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멋이 있다. 더군다가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와 콜라보레이션해서 만든 컬렉션 틴은 그냥 집에 갖다 놓기만 해도 빈티지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바이브가 저절로 풍기는 디자인이다.
기본 클래식 버전은 건포도가 들어갔고 그 외에 헤이즐넛, 피스타치오, 밤 등 넛츠(nuts)를 넣은 다양한 종류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이 있었다. 건포도보다는 밤을 좋아하는 나는, 체스넛 맛을 골랐다. 우리 남편의 이탈리언 친구한테 이걸 샀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퓨전 말고 건포도 들어간 클래식이 진짜라며 흥분했지만은. 만약 싱가포르 친구가 카야잼을 넣은 송편을 샀다며 연락이 온다면 그런 기분일까?
특별한 디저트를 위한 최고의 레시피이다. 천연 발효시킨 반죽에 절인 밤과 잔두야(Gianduja, 헤이즐넛을 넣은 이탈리아의 초콜릿 혼합물, 대량 생산되는 초콜릿의 단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맛이라고 한다)를 넣고, 밤 크림과 초콜릿 아이싱으로 덮었다.
돌체앤가바나 콜라보레이션 콜렉션은 틴 안의 포장도 스윗했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올해 크리스마스는 11개월이나 남았지만, 틴을 오픈하면서부터 내 기분은 벌써 크리스마스였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달콤한 맛이었다. 한국에서 즐겨먹던 밤식빵에, 누군가 정성스레 직접 만든 초콜릿과 넛츠 크림이 얹힌, 추운 날 따뜻한 차와 모닥불에서 먹으면 바로바로 기분 업될 그런 맛이었다.
물론 지금 두바이는 새벽과 밤에는 11도까지 떨어지긴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26도인 추운 겨울도 아니고, 모닥불도 없고 크리스마스도 아니다. 파네토네 덕분에 눈과 코와 혀로, 추운 겨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포근한 시간 속으로 살짝 돌아갔다 온 듯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둘째치고, 두바이에서 반바지 입고 크리스마스를 보낸지 십년이 넘었지만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기분도 나고 즐거웠다. 칼로리는 노코멘트.
앞으로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무조건 파네토네와 함께할 예정이다. 파테토네처럼 스윗하고 로맨틱한 일년이 되길. (뒤늦게, 아님 너무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