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Nam June Paik) 오마주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르고
양말의 구멍을 꿰매지 않고 가위로 잘라 구멍을 내고
티비를 가로로 보지 않고 세로로 세워 보고
피아노를 치지 않고 부신다.
틱톡 챌린지가 아니다. 약 90여 년 전, 그러니까 1930년에 태어난 백남준의 예술 작품들이다. 부유한 집에 태어나 음악가로 자란 백남준이 행위예술가가 되어 이런 작품활동을 한 모티베이션은 호기심과 재미다. 끝까지 파고드는 오타쿠 정신과 그릿 스피릿도 있었지만 그는 재미있어서 계속했고 확실히 재미있게 살았다.
일본부터 독일, 미국까지 궁금하면 일단 가보고 신기한 것은 직접 다 해보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갔다.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전위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고 백남준의 작품은 음악뿐 아니라 미술, 그리고 복합 예술이 되었다.
60년이 지나 기술과 미디어가 발전한 지금도, 여러 분야를 접목해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하이브리드 작업들은 왕왕 챌린징하다. 하나 이상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냥 살아가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백남준은 조국을 떠나 외국인 노동자로 해외에 살면서 영어, 일본어, 독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해야 했고 아내도 일본인 구보타 시게코(Kubota Shigeko)다. 그의 예술 작업뿐 아니라 삶 자체가 하이브리드였다. 1950년대에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과연 가능했었는지 솔직히 상상이 잘 안되지만.
백남준은 TV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처음으로 예술에 활용해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의 작품에는 엽기적이고 도깨비같이 사람들을 홀리는 콘텐츠와 스토리가 메인이다. 어딘지 불편하고 이상해서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기묘한 구성. 꿈과 현실 사이 어디쯤인듯한 곳에서 유머 있으면서 친근하기도 한 작품들로 사람들에게 비판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그가 만든 우습고 어글리한 로봇 K-456(아름다운 모차르트 협주곡 456번과 정반대)을 전시하던 중, 로봇이 거리로 나와 차에 치여 쓰러진 퍼포먼스를 했다. '21세기 최초의 참사(The first catastrophe of the 21st century)'라고 하는 이 쇼는, 20년 동안 함께 공연을 하던 로봇이 알고 보니 죽음을 맞이한 생명체가 있는 로봇이었다! 는 웃픈 설정.
30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백남준은 세계의 평화와 소통에 대해 2006년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작업을 했다. 남들이 비웃어도 미술과 TV에 대해 아는 게 없어도 계속 디깅하고 만들고 방법을 찾고 가지고 놀았다. 오타쿠 정신과 재미만 있으면 남들이 뭐라 해도 상관없고 계속할 수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