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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봉낙타 Mar 21. 2024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수복도> Happily Ever After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사연 없는 그림은 없다.


윤열수의 <알고 보면 반할 민화>라는 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읽었다. 오랫동안 작품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화지만, 하나하나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사연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600여 년 전 조선 시대의 사람들과 현대 사람들의 궁극적 바람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아주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이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도 덤으로 발견.



수복도, 134x33, 지본채색, 가회민화박물관


내가 혹시 민화 문자도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했었나? 머쓱. 까만색 글자와 그림들이 있는 문자도는 어딘지 모르게 부적 같다는 느낌으로 급하게 결론내고 그렇게 생각했다. 자세히 보지도, 그림 속 이야기를 알아보지도 않고.


가회민화박물관에 있는 <수복도>는 동물과 자연을 모티브로 한 그래픽과 문자의 조합으로 장수의 수(壽)와 행복의 복(福)을 반복적으로 썼다. 아니 그렸다. 요즘 채팅앱에서 쓰는 이모티콘 같기도 하고 브랜드 로고 심볼스럽기도 하다. 너무 심각하지 않은 덜 진지한 글자 디자인 하나하나에는 유머도 있고 동물과 글자의 표현도 깜찍스럽다.


600여 년 전 우리 조상님들은 크리에이티브에 진심이었던 듯.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집에 걸어놓고 소원을 기도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해필리 에버 애프터(Happily Ever After)',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백설공주의 한 장면 같이 아름답다. 에버 애프터는 수(壽), 해필리는 복(福), 그러니까 <수복도>의 영어 타이틀은 'Happily Ever After'가 완벽하게 매칭되지 않나?


외국에서 전시 큐레이팅을 하면서 한국화나 한국 작가들의 타이틀을 영어로 찾아주는 것이 내가 즐기는 작업 중 하나다. 이렇게 <수복도>를 'Happily Ever After'로 바꾸면서 혼자 소소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손으로 한땀한땀 그린 이런 민화 작품들은 드로잉 스킬보다는 아이디어를 중요시한 듯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600년 전에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작업하신 건가? 그래서 조선 당시에는 궁중 화가들처럼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존경받지는 못했을지언정 형식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한 민화 작품들이 재미있다. 웃기고 귀엽고 특이하다. 민화 작가들이 지금 이 시대에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많은 MZ들에게 추앙을 받았을 것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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