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것이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것이다.”
[1] 성적 정체성과 존엄한 죽음의 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좋은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듣고 접하게 된 ‘은중과 상연’, 초반은 너무 집중해서 빠르게, 중반은 약간 느슨해져서 천천히, 마지막은 맥이 빠질 듯 마무리가 안 되는 듯 보여서 스치듯…그래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다. 사회적 금기를 통속적 방식으로 드러내는 작가와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작가를 알지 못해 물어볼 수 없지만, 시청자에게 극단의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첫 번째 질문은 성적 정체성이다. 성적 정체성 앞에 모든 것을 던지는 자들의 고독에 대한 비밀의 이야기들, 존재의 밀도를 느낄 수 있는 그 순간, 그 존재의 밀도를 포기할 권리에 대한 도발적 질문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시대의 금기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낯설기보다는 우리가 숨겨왔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게 태어나 다르게 살도록 강제하는 사회, 그 사회의 압력으로 평생으로 다른 정체성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극단적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분노…어쩌면 상연이 오빠의 극단적 선택은 유일한 출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거대한 장벽을 뚫어버리지 못한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생명을 선택할 권리다. 왜 상연은 은중에게 스위스로 함께 가자고 했을까? 지난 삶의 과정에서 은중에 대한 상연의 미안함 때문일까? 웃는 모습이지만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동행자가 필요해서였을까? 오롯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 동행은 또 다른 가해가 아닐까? 아니 그것마저 감내해 달라는 죽음의 맞닿은 자의 협박은 아닐까? 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간다. 누구나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달리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길에 대한 치열한 회피는 아닐까?
‘은중과 상연’은 통속적 극 전개 속에 금기의 사실과 극단의 질문을 던져 넣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몫으로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갈 것인가? 그렇게 뚝 두 가지 거대한 질문을 던져놓고 극은 초반을 달렸고,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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