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은중과 상연”

[2] 니체가 경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by 똘레랑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2] 니체가 경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글을 쓰라고 슬그머니 등을 미는 드라마다. 재밌어 눈을 못 떼는 그런 드라마는 아닌데 중간에 중단할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의 밀고 당김이 머릿속을 오가는 그런…뭘까? 그런 슬며시 들이닥치는 그런 손짓…이 드라마는 글을 쓸 때마다, 글 중간의 여백이 생기는 점점(…)이다.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는 그런 답답함, 이해 불가능, 흐릿함, 몽롱함…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시작도 끝도 선택할 수 없는 자들은 그 무력감 속에서 용서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이런 커다란 문제의 전체 얼개는 통속 그 자체에 묻어 얹혔다. 시청자의 시선을 잡는 구도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짜증과 답답함으로 포장되었다.


니체가 싫어할 인간 군상들로 가득한 드라마. 나약한 인간에 대한 동정, 상처받은 인간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그런 나약한 인간들의 관계 구성이다. 상처를 드러내며 시청자의 눈과 귀를 빼앗는 인간 군상을 여기저기 배치한…그래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드라마이고, 종교적 이야기다. 니체가 그리도 싫어했던 동정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은중과 상현’, ‘군서 동물화되고 인간의 총체적 퇴화로서 난쟁이 짐승’으로 미치도록 싫어했던 인간들로 구성된 이 드라마를 아마 니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구적 사자(使者)’와 ‘미래의 인간’이 필요하다고 니체가 절감했을 드라마의 구성, 그래서 ‘총통’이 필요하다고 ‘초인’이 필요하다고 했음 직한 드라마다.

니체는 틀렸다. 인간은 초인도 아니며 총통이 필요하지도 않다. ‘새로운 철학자’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연민과 동정, 사랑과 증오, 고통과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맺어진 그런 공감의 삶이니까…그래서 통속이라고 폄하하고, 과장된 인간상을 만들어도 우리가 그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친근하다. 짜증 나지만 보게 된다. 이해할 수 있지만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용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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