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지치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진다
변호사 하면 시간이 돈이고, 바쁘게 일하는 직종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변호사 업무는 공장식이 아니라 맞춤식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다 다른 사건들에 맞추어 사실관계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판례를 찾아 법리를 구성하며, 서류에 글을 써나갈 때마다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표현은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서면 작성일을 하고, 재판 참석과 의뢰인 면담을 위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업무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은 부지기수다. 나도 야근과 주말출근을 수시로 하며 사건을 수행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일할 것이 있더라도 되도록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도 여느 날과 같이 퇴근을 앞두고 오랜만에 칼퇴해서 집에 가서 놀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을 마무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방에 오셔서 급한 사건이 있는데, 내일까지 서면을 완성해 줄 수 있겠냐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들어올수록 승부욕에 불타는 피곤한 성격인 나는 소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친 인격자셨던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야근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 신경 쓰이셨던지 저녁이나 든든히 먹고 일하라고 하시더니, 소고기집에 데려가서 소주를 시키시는 것이 아닌가.
한번 열면 멈출 수 없는 것은 프링글스 뚜껑이나 소주 뚜껑이나 비슷하다.
결국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그렇게 일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건물 청소아주머니와 보안요원이 차례로 저 방에 있는 게 사람인가 귀신인가 확인하러 오신 다음에야
나는 초안을 완성해서 새벽 4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몸살이 났다. 그런데 다듬어진 서면을 의뢰인에게 전달하니, 의뢰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꼬투리를 잡았다. 나는 평소 의뢰인들에게서 나름 친절하다는 말도 꽤 듣는 편이지만, 이날은 도저히 친절하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서류를 무사히 제출하고 퇴근한 후에야 그 말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의뢰인은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했는데,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이때 깨달은 것은 사람은 몸과 마음이 힘들면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주로 마음이 힘든 직업인데, 이날은 몸까지 힘들어서 친절하게 의뢰인을 대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못다 한 업무가 있더라도 회사보다는 집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회사에서 일하면 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집이나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이 나만의 템포를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다.
변호사는 서면만 써내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