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by 레강스백

요즘 "에이 씨ㅂ"를 자주 한다. 아기 키우면서 시발은 못하겠고 '씨ㅂ'까지만 하고 입을 닫늗다. 욕을 달고 살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잠깐 그립기도 하고, 담배생각이 나기도 한다.


아기랑 실갱이 하는 하루하루가 만만치 않다. 편두통이 생겼고, 입안은 세군데가 헐었다. 말 못할 곳도 아프다. 오늘 아침은 남편이 출근하는 것도 못보고 드러누웠다.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3만원 입금했으니 키즈카페 다녀오라고. 키즈카페 가면 지혼자 잘 노니까 나는 앉아서 쉴 수 있다고 했다. 아니면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오라고 했다. 오우~


참 고맙다. 남편 카드, 현금카드, 생활비가 나에게 있고, 3만원정도야 내맘대로 쓸 수 있긴 하지만, 솔직히 3만원을 나에게 쓰기는 좀.....출처를 모르게 쓴다고 해도 좀ㅎㅎ 이 3만원은 오로지 나 먹고 노는데 쓰겠다!!!!!!


아울렛 화장실 갔다 나오는데 초밥접시가 빙그르르 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향했다. 걸었다. 이끌렸다. 부페는 아기랑 가기 힘든데. 에라 모르겠다~스시부페. 초밥. 널 먹어주겠다.


아기띠 하고 샐러드바, 아기 밥을 챙겨놓고 아기를 의자에 앉혔다. 아기는 닭꼬치를 집중해 서 먹더니 이내 부잡스러워졌다. 음료수 자기 배에다 붓고, 포도 껍질 까서 바닥에 던지고, 소리지르고, 그 와중에 다른 아기에게 인사하고. 식당 안에서 '엄마 힘들겠다'를 몇 번 들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우아하게 여러 접시를 비웠다. 이때까지는 정말 고상하게 먹었다.



아기가 음식장난을 끝냈다. 아기의자에서 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조금 덜먹었는데 마음이 급해지고 슬슬 짜증이 나려는 찰나, 남자직원이 아기에게 왔다. 안아서 내려놓고 말걸고 놀아줬다. 아기는 남자한테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데 오늘은 웃으며 잘 놀았다.


남직원은 계산 포스모니터에 아기를 앉혔다. 아기가 음식 묻은 손으로 모니터 터치를 하는데 심장이 오그라들고 미안하고 창피하고...

"미안해요. 이거 계산되면 어떡해요? 아...얼른 치우고 올게요."

"괜찮아요. 계산 안하면 되죠 뭐. 어? 소주찍었네? 엄마가 소주먹고 싶대? 생맥주도 찍었네? 이건 네가 먹을거야? 우와 잘하네."

나보다 아기랑 더 잘 논다. 20대 초반 남자가 아기랑 놀아주는거 처음봤다. 주방 아주머니가 한소리 하셨다.

"또 애기랑 노냐? 얘는 애기만 보면 일을 안하고 애랑 놀아!!!!"

남직원은 아기를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도 미안해서 마지막 커피 한 잔은 원샷 하고 갈준비했다. 아기 가방 싸면서 가방에 있는 바나나를 직원에게 줄까 하다가 멈췄다. 샐러드바에 널린게 바나나인데 안주느니만 못할 것 같았다.


만원짜리 한 장을 얼른 남직원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남직원은 잠깐 놀라고는 태연한 척 했다.


계산하면서 남직원이 직원쿠폰이라며 쿠폰을 한 장 줬다. 정신없이 받아 아랫층 커피쿠폰인가 했는데 다시 보니 1인 무료쿠폰이었다. 아...정말 미안하고 고맙고.


당장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기야, 자기가 준 돈으로 스시부페 갔거든? 거기서 이래저래 이래저래 해서 쿠폰받아왔는데 1인 무료쿠폰이야. 대박이지?"

"기분 좋아졌다니 다행이네. 흥분하지 말고. 그럼 1인에 19000원이니까 만원 팁 준거 빼면 9000원 번거네?"

남편님 요러고 계신다. 9000원 벌어서 기쁘셨어요?ㅎㅎㅎ 그리고 팁 만원은 내 비상금으로 준거거든요?


신랑이 준 돈 3만원이 흘러흘러 스시부페 무료쿠폰으로 다시 신랑에게 돌아왔다. 말이 씨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배웠고, 덕도 쌓으면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돈이 돌고돌고 돌아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오늘 하루만에 경험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더 감사하고 더 겸손하게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기분전환 제대로 하고, 기쁘게 집에 들어와 아기와 전쟁 또 시작. 오늘은 초밥빨이다. 지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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