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식 남의자식

다 자식

by 레강스백

미끄럼틀에서 초등학교 3학년 쯤 되는 남자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한 7~8명 정도 되어 보였다. 뛰어내리고 잡고 노는데 23개월 내 아기의 기준에서는 위험해보였다. 아기가 형들 따라서 뛰어내리면 어쩌나 조마조마. 아기 움직임만 지켜보고 있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깜짝 놀라 비명까지 나왔다.


"죄송합니다."


미끄럼틀에서 놀던 남자아이 중 한명이었다.


"죄송합니다. 탈출해야해서..."


"너 뭐하는 거야!"


남자아이의 말을 끊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쭈뼛쭈볏 뒷걸음질 치다 달려갔다.


'탈출이라니. 약간 모자란 거 아니야?'


순간 놀라기도 했고 기분 나빴다. 실수라고 해도 엉덩이를 콱 움켜쥔게 불쾌했다.


다시 미끄럼틀에서 다들 놀고 있는데 분위기가 살짝 이상했다. 남자아이들이 내 아기를 피해서 놀았다. 자기들끼리 놀긴 노는데 우리를 신경쓰고 있었다. 나역시 저 아이들이 신경쓰였다.


아이들은 미끄럼틀에서 눈을 감고 돌아다녔다. 눈감고 정해놓은 위치까지 가는 놀이였다. 말 그대로 "탈출놀이"였다.


아. 그래서 허우적 거렸구나. 정말 실수로 내 엉덩이를 꼬집었구나.


남자아이들은 무서운 아줌마가 또 화를 낼까 노는 아기를 슬금슬금 피해다녔다. 눈감고 노는데 아기가 있으니 노는데 상당히 불편했을 것 같다.


'저 아이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다짜고짜 이리 와보라고 하면 또 겁먹겠지. 과자라도 사가지고 갈까? 그동안에 가버리면?'


잠시 고민하다 아이에게 걸어갔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미끄럼틀 위에 서 있는 남자아이를 올려다 보았다.


"아줌마가 너무 놀라서 그랬네. 눈감고 있어서 못봤구나?"


"네. 죄송합니다."


"아냐. 아줌마가 못봐서 그랬어. 미안해. 화내서 놀랐지?"


"괜찮아요."


"그래. 정말 미안해. 우리 또 보자!"


그제서야 아이들은 마음이 편해졌나보다. 아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는 어린시절 친구가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밖에 나가 노는 것까지 간섭을 했다. 같이 노는 친구가 나보다 한살이라도 어리면 집에 들어와서 혼났다. 수준낮은 애들하고 논다고 야단맞았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이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엄마랑 친한 아줌마의 자식하고만 놀아야 했다. 그마저도 엄마가 싫으면 놀지 못했다. 친구들은 나를 피했다. 왕따가 아닌 '은따'가 되었다. 성인까지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들도 잦은 이사와 결혼, 장례를 치르면서 다 떨어져 나갔다.


내 기준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것. 나때문에 내 아이가 외톨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똑같은 자식인 것을.


뭐가 그렇게 짜증났을까? 실수로 엉덩이 좀 만졌다고 어린아이에게 화를 냈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아줌마이고 싶다.

내 덩치만큼 마음도 푸근한 아줌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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