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할 때마다 고역이다. 아기가 다리를 붙잡고 울거나 의자를 끌어와 올라가서 물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의자에 올라가 노는 것을 내버려뒀다. 옷은 다 젖고 바닥에 물은 흥건해졌다. 위험한 물건은 치워뒀지만 세젯물이 바닥에 쏟아지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기가 다시 의자를 옮겨 설거지 해놓은 냄비들을 다시 세젯물에 담갔을 때 나는 폭발해버렸다.
"야!! 하지마! 왜그래?"
나는 괴물처럼 소리를 지르고 물 없는 쪽으로 아기를 끌었다. 무섭게 째려봤다. 아기는 조용히 나를 쳐다봤다. 내 눈치를 보더니 젖은 옷 그대로 터벅터벅 거실로 걸어갔다. 앉아서 조용히 자동차를 가지고 논다.
'이놈의 시키는 울지도 않아. 미안하게.'
길게 숨을 쉬었다.
나는 왜 화가 났지?
아기가 세젯물을 마시려 해서?
바닥에 물을 쏟아서?
아기가 설거지를 방해해서?
아기 감기걸릴까봐?
일거리가 더 생겨서?
물을 계속 틀어서?
.
.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
두돌도 안된 애가 엄마 화난 모습을 보고 하던 장난을 멈췄다. 조용히 걸어갔다. 혼자 놀고 있다. 아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화장실로 가서 아기 물놀이 장난감을 가져와 싱크대에 부었다.
"이우야~ 이우야~ 이것봐. 이우 장난감이야."
아기는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나는 물을 틀었다.
"이우야. 엄마 수건 깔았어. 설거지 놀이 다시 할까?"
아기가 머뭇거리다가 달려왔다. 다시 의자 위로 올라갔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나 설거지하는 그릇 챙겨주고 난리가 났다. 웃고, 물장구치고, 소리지르고. 니옷과 내옷은 다젖었다.
영재발굴단에서 '이수'라는 아이가 나왔다. 아홉살 그림동화작가이다. 저번에 방송나왔었는데 이번주에 또 나왔다. 세번째 그림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이다. 재능을 떠나서 아홉살 밖에 안된 아이가 너무 의젓했다. 4남매 맏형. 막내동생은 입양된 아이인데 장애가 있다.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어른같았다.
"애어른 같아. 난 저런애 별로야."
신랑에게 투덜거렸지만 사실은 가슴이 쿵쾅거려 미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엄마 때문이다.
"저는 아이들이 벽에 낙서하고 어지르면 너무너무 재밌어서 저도 같이해요."
인터뷰하는데 정말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침에 내가 했던 행동과 정반대이다. 아이들과 같이 얼굴에 물감칠을 하고 사진을 찍은 모습도 있다. 나는 매일밤 반성을 하면서도 아기가 어지르면, 밥을 안먹으면, 물을 쏟으면 화를 냈다. 티비속 아이들 엄마는 나 보라고 방송에 출연한 것 같았다.
"맘이 너무 안좋아. 나는 이우한테 맨날 하지 말라고만 하잖아. 주눅들게 안 키울거라 했는데 벌써 난 주눅들게 키웠네. 속상해."
"우리가 보통사람이야. 다 저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게 어디 쉽나. 반성했으면 내일 더 노력하면 되는 거지."
신랑은 참 긍정적이다. 나는 투덜이 스머프인데.
아기를 낳고, 나는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여태껏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구나. 아기에게 시간이 많이 뺏기니 내 시간 1분 1초가 소중해졌다. 그만큼 조급해졌다. 얼른 얼른 집안일을 끝내야 아기 자는 시간에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후딱 해버리려 했다.
같이 수업들은 사람들이 나 빼고 모두 계약했다. 다른 지역 언니들의 응원도 많이 받았고, 뭐 이래저래,,, 내가 제일 먼저 계약을 할 것 같았는데. 한 줄도 못 쓸 때가 더 많다. 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아기가 더 미웠다. 사실은 나의 조급증 때문인데 말이다.
아기가 꼬깔콘을 바닥에 흩뿌리고는 발로 밟고 논다. 매직을 얼굴에 칠하고 다닌다. 며칠전이었으면 한숨부터 나왔을 텐데.
에라이 그냥 놀아야겠다. 신랑오면 신랑보고 치우라하지 뭐. 천천히 가야겠다.
아기는 나를 용서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