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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Nov 12. 2020

입덧이 아까워? 물값이 아까워?

연어덮밥 에세이

아파트 전체가 갑자기 단수되었다. 정화조 청소를 하던 중 기계 고장으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 하원 하는 오후쯤, 소방차가 와서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집 앞 마트는 생수를 사는 사람으로 붐볐다. 좀 일찍 단수되었으면 밥을 못해 외식했을 텐데, 밥 다 해놓고 상추도 다 씻어놓고 물 다 쓰고 나니 단수되었다. ㅎ

남편에게 단수되었다고 전화했다. 남편은 퇴근길에 씻고 온다고 했다. 나는 통화한 김에 먹고 싶었던 연어를 좀 사 오라고 했다. 원래 먹성은 그대로인데 입덧으로 먹지 못하니 고통스러웠다. 대리만족으로 먹방 유튜브를 보는데 연어에 꽂혀서 아주 연어 연어 연어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편은 대형마트에 가서 생수와 연어를 사 왔다.

출처 : 픽사베이

연어를 썰었다. 연어 소스도 바쁘게 만들었다. 겨자 간장도 꺼내고. 한입 맛보는데 세상 행복했다. 그래 이거야 이거. 아기가 먹고 싶었던 것은 연어였어, 연어!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답답한 속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연어 500그람을 순식간에 먹었다. 한 접시 수북했던 연어가 내입으로 사라졌다. 이 정도면 나도 푸드파이터에 도전해볼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그제야 단수가 걱정되었다. 스피커에서는 밤 11시까지 단수 안내 방송을 했다. 오늘 안에 고친다고 했으니 뭐 하루 동안에 별일이야 있겠어? 날 추워서 매일 씻기지도 못하는데.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속이 이상했다. 애 재운다고 누워있어서 그런가 입덧의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진짜. 맛있게 먹고 속 안 좋기 있기 없기?

막히는 퇴근길에 대형마트까지 가서 연어를 사다 준 남편 눈치가 보였다. 열심히 참았다. 갑자기 많이 먹어서 그럴 거야. 많이 먹고 바로 누워서 그럴 거야. 걸어 다니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콜라도 들이켰다. 도저히 안 되겠길래 남편을 불렀다.

"미안, 나 토 좀 할게."

안방 화장실 가서 먹은 것을 싹 다 게워냈다. 세면대 물이 나오지 않아 생수통으로 입을 헹궜다. 다 토해내니 속이 좀 나아졌다. 누워서 티브이를 마저 봤다.

남편은 수도 고쳐지면 물이 계속 흐를 수 있으니 수도꼭지 열어진 곳 있는지 잘 보라고 했다. 나는 물 쓰지도 않았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라고 했다. 틀어져 있으면 소리 들리겠지 뭐.

남편이 밖에서 씻고 대형마트에서 연어를 사 오느라 저녁이 늦어졌다. 덕분에 자는 시간도 두어 시간 늦어졌다. 열두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다섯 시쯤 깼다. 화장실 다녀오는데 남편도 잠에서 깬 것 같다.

"어디서 물소리 들리는데?"

"이제 물 나오나 보지."

"그런가?"

다시 잠들어서 출근시간에 일어났다. 남편은 안방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오더니 나를 째려봤다.

안방 세면대 물이 밤새 틀어져 있었다.......

아이 잠버릇이 심해 거실에서 함께 자느라 안방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제 토하고 수도꼭지 올렸는데 물 안 나와서 생수로 입을 헹궜다. 잠근 기억이 없긴 하다. 남편은 아침시간 내내 수도 누진세를 계산했다. 한 달 동안 회사에서 씻고 온다고 한다. 아따 진짜 드릅게 뭐라 하네.

남편 기분이 좀 풀려 보여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연어 먹고 바로 토한 게 아까워? 물 계속 틀어놓은 게 아까워?"

푸하하하. 아 미안해 미안해. 아따.... 진짜 드릅게 머라 하시네요. 나는 당신 과속 딱지 7만 원 끊어도 실수라고 관대하게 넘어가 줬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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