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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ul 28. 2022

썩은 1등급 유정란을 비싸게 사고 드는 생각

유정란 에세이




계란을 신경 써서 사는 편이다. 아이는 편식이 심하고 야채도 잘 안 먹는다. 그나마 매일 먹고 또 잘 먹는 단백질이 계란이라 이것만큼은 좋은 걸로 먹인다. 한 판에 25000원이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달걀의 5배나 된다. 달걀 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런 자연방사 달걀에 비하면 뭐.





시골에서 청란도 받 아오는데 이건 뭐 너무 비싸서 돈 내고 사 먹으라고 하면 못 먹을 것 같다. 한판에 4만 원 정도 한다.

 


웬만한 유기농 식재료는 가격이 비싸다. 우유도 이번에 무항생제 우유로 바꾸긴 했다.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먹었다간 식비가 거덜 날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

 


남편은 그게 그거라며 싼 거 먹으라고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어떤 음식을 몸에 넣고 사느냐도 중요하다.

 


대형 마트에서 장 볼 때 계란도 꼭 주문했다. 아까 이야기했듯 방사 유정란 난각 번호 1번은 꽤 비싸다. 그래도 꼭 한 판씩 주문했다. 그리고 특히 아침에 샐러드 먹을 때마다 찐 달걀을 보약 먹듯이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그런데 한두 번 계란이 올 때마다 불편한 일이 생겼다. 가격대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산란 일자가 오래된 계란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낳은 지 2주가 넘은 계란이었지만, 유통기한에는 저촉되지 않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배달 메시지에 ‘낳은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달걀로 보내주세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계란은 노른자가 흐물거렸고, 어쩔 때는 깨뜨리자마자 노른자가 흘러버리기도 했다. 까맣게 썩어버린 것도 있었다.

 


두어 번 신선하지 않은 비싼 유정란을 받고는 실망해서 다시는 마트에서 방사 유정란을 사지 않는다. 아예 닭은 방목해서 파는 곳에서 따로 시켜 먹는다. 당일 낳은 달걀만 보내준다고 광고하는 만큼 그냥 봐도 신선한 달걀이 왔다.

 


인생은 어쩌면 계란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자연에서 방사해서 키운 행복한 닭이 낳은 계란이라 해도, 유기농 사료를 먹였다고 해도 썩어버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쩌면 썩어버린 유기농 달걀보다 케이지 속 닭이 방금 낳은 달걀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살면서 좋은 인생이라 칭하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좋은 삶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돈, 가족, 건강, 여가, 인간관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조화와 균형이 맞을 때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은 많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면? 돈도 많고 건강하지만 너무 바빠서 여행 한 번을 맘 편히 못 간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살지만 매일 만나는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다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썩은 1등급 방사 유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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