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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an 08. 2019

감자탕과 스테이크

해장국은 언제 먹어도 참 맛있다. 시원한 콩나물 해장국도 맛있고 들깨 팍팍 들어간 순대국밥도 맛있다. 뼈다귀감자탕은 해장국 중에서 최고인 것 같다. 국물 한수저 들어가면 밤새 술마신 속이 묵직하게 치료되는 느낌도 들고. 쪽쪽 빠는 뼈다귀, 포슬포슬한 감자도 참 맛있다. 해장국을 안주로 먹는 술은 말 그대로 해장술이다.


나는 참 술을 좋아했다. 20대 시절 술자리의 마지막 코스는 거의 해장국집이었다. 동트는 모습을 바라보며 술취한 와중에도 어떤 경이감이 들었던 것 같다. 곧 서른이 된다는 서글픔, 눈쌓인 새벽, 24시간 감자탕집. 경이감은 곧 끔찍함으로 바뀌었다. 감자탕집에 새벽까지 앉아있는 40대, 50대 여자들이 보였다. 그녀들은 무슨 이유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을까? 무너진 화장, 알딸딸하게 눈풀린 그녀들이 참 한심했다. '나는 아직 20대니까, 젊으니까.' 로 나를 합리화했지만 그들을 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생애 몇 번 해보지 않은 큰 결심을 했다.


'술을 끊는 것은 못하겠다. 하지만 남자와 감자탕집에서 데이트 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이 다짐을 외칠때 욕까지 했다.


그 다짐으로 감자탕, 오리탕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신랑이 좋아하는 메뉴라 자주 만들기도 하지만 미혼시절 나의 다짐의 영향이 더 크다. 뭐 그렇다고 술을 더 곱게 먹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간 모임에서 말아주는 소맥을 그대로 다 받아먹고 맛이 갔다. 소주를 마시면 정신을 잃는다는 것을 술 안마시고 사는 동안 깨끗하게 잊어버렸다.ㅋㅋㅋ


어제는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호주산 소고기 아주 싸게 세일할 때 사서 종종 만들어 먹는다. 인터넷 레시피 보고 4번정도 시도했는데 어제 드디어 드디어 스테이크 만들기 성공했다. 어떤 날은 너무 익혀 질기고, 어떤날은 겉만 익고 안익어버리고, 어떤날은 금방 식어버리고. 먹어도 조금 아쉽게 먹었는데 어제는 우리가 좋아하는 미디움에 부드럽고 간도 딱 맞고 정말 맛있게 되었다. 800그람에 만원정도이니 레스토랑 반의반 가격도 안나온다. 이제 만드는 법 알았으니 고급소고기로 스테이크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그런데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다. 뭔가 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뭔가 기분 나쁘다.




감자탕을 집에서 만드니
감자탕 집에 갈일이 없다.

스테이크를 집에서 만드니
레스토랑에 갈 일도 없다...


"외식은 한달에 한 번 정도, 못해도 빕스는 가야겠어. 여자는 그래야 해."
매달 빕스정도는 가야한다고 남편을 교육시켜 놓고 실천하며 살았다. 그런데 스테이크 굽기를 시도한 작년 여름부터 레스토랑 근처를 안갔다. 아...내가 남편 조련을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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