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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an 08. 2019

그놈의 용서란 도대체 뭘까?

배우 손예진을 참 좋아한다. 너무너무 예뻐서 손예진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본것 같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내머릿속의 지우개'이다. 부잣집 아가씨가 손예진이고 그 아가씨는 어른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 치매에 걸리는 아주 식상한 내용이지만, 몇번이나 반복해서 볼 정도로 매력있는 영화였다. 벌써 10년도 지난영화지만 생각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예진의 미모와 젊음은 변함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극중 대사 한마디 때문이다.

"용서가 뭐가 어려워? 용서란 미움에게 방한칸만 내주면 되는거야."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는 남편 정우성에게 손예진이 한 말이다. 정말? 그러기만 하면 용서가 된다고? 그놈의 용서란 도대체 뭘까?

태풍으로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재난 문자에 아파트 관리실 방송에 어린이집 전화에. 비가 많이 와서 어린이집 차량등원은 안하기로 했고 등원해도 점심먹고 하원하는 걸로 전달을 받았다. 우리집은 어린이집과 3분거리에 있어 등원을 했다. 점심 먹고 하원했다. 다음날은 태풍이 심하면 휴원한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동네는 태풍이 조용히 비껴갔다. 날씨가 흐렸지만 비도 안오고 바람도 잠잠했다. 등원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등원한다고 했다. 다만 금요일이라 엄마들이 여행계획 있는 집도 있고 해서 우리 아이 혼자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일찍 하원하는 건 어떠냐고.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오전시간이 중요하지 점심먹이고 나면 재우기만 하면 되는게 그게 뭐 어렵다구. 그렇게 등원시키고 오전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서둘러 커피숍으로 향했다.

가는길에 우리반 아이차를 봤다. 어린이집에 차를 세워 등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 혼자 있을 거라고 했는데? 갸우뚱 하며 커피숍에 앉았다. 두시간 빡시게 글쓰고 하원 마중나갔다. 신발장에서 아이 신발을 꺼냈는데 아이들 신발이 있었다.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 등원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하원도 별말 없이 제대로 된 시간에 하원한다고 했다. 아이들 모두 등원했고 우리아이만 일찍 하원을 한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동네어린이집이라 금방 소문날텐데. 엄마들끼리 한번만 만나면 알 수 있는 상황인데 나를 무시한는 건가? 만만한가? 다 이해해주니 이젠 그냥 보내내?

온갖 감정이 솟았다. 목구멍까지 화가 났다가 이해하려 했다가.....평일었으면 바로 물어볼 수 있을텐데 마침 주말이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기분 우울해 있으니 남편이 말했다.

"감정 쌓아두지 말고 선생님께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전화하려 했다며 먼저 말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왜 전화드렸는지 선생님께서 아시는 것 같으니까 선생님이 먼저 말씀하셔요."

30분정도 통화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은 내가 오해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셨고 사과하셨다. 혼자 열받아서 원장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으면 담임선생님이 많이 곤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정당한 이유였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까지 감정이 격해지지 않음에 감사하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나는 흔쾌히 용서했다. 정말 기분좋게 용서했다. 내가 이렇게 관대한 사람인가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갑자기 내가 용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훌쩍 가버린 엄마아빠도 용서하고, 나에게 못되게 굴던 시어머니도 용서하고, 함부로 아빠 유품을 고물상에 팔아버린 외삼촌도 용서하고, 자기 딸보다 더 어렸던 나를 성폭행한 친척도 용서하고, 제일 예민한 아이문제로 실수한 선생님도 용서했는데..... 왜 나는 저 어리석고 불쌍한 동생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까....

내가 엮고 있는 글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미움이라는 감정 앞에서 한달이상 글을 못쓰고 있다. 이젠 마주해야겠다. 그동안 피하고 외면하고 꼭꼭 숨겨놨던 미움을. 그럼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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