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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an 10. 2019

그쪽 엄마와 우리 엄마의 운명을 바꿔주세요.

마르지 않는 눈므

노부부가 중환자실에 들어왔다. 시골병원 중환자실은 말이 중환자실이지 일반 병실과 비슷하다. 출입제한이 없다. 노부부는 요양보호사와 함께 왔는데 두 분 다 치매라 하였다. 할머니가 숨이 안 쉬어져서 입원했다고 했다. 할머니 코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면 떼 버리고, 떼 버리고. 간호사가 계속 뭐라 해도 못 알아먹고 한참 실랑이했다.


밥때가 되어 노부부는 식판 하나로 밥을 같이 먹고, 나는 그냥 계속 시편 보고 한숨 쉬고 그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할머니가 조는 느낌으로 엎으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소꿉놀이하듯 할머니 등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실에 가서 할머니가 밥 먹 엎드려 잔다고 말했다.


난리가 났다. 밥알이 기도로 들어간 것이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무슨 기계를 달고, 의사가 침대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했다. 간호사들은 할아버지에게 자식들 어딨냐고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엉뚱한 말만 했다. 한 간호사가 할아버지 핸드폰을 찾아내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식이 다섯쯤 되는 것 같았다. 두 명 정도는 전화를 안 받고, 딸로 보이는 사람은 큰오빠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끊었다. 큰오빠란 사람은 멀리 살아서 못 간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간호사는 다시 전화해서


"지금 당신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고요! 보호자가 오셔야 한다고요.!"


한참 싸웠다. 땀 뻘뻘 흘리며 심폐소생술 하던 의사가 옆에서 욕을 했다.


"염병들 하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나만 지옥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눈물이 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맞은편에 누워있는 엄마만 평온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다.


'저쪽은 다들 엄마가 필요 없나 봐요. 저는 아직 엄마가 필요해요. 우리 엄마 말고 저쪽 엄마를 데려가 주세요.'


신에게 빌었다. 기적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기지개 켜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미친 사람처럼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도는 뚫리고 의식이 없이 누워있었다. 간호사가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원래 이런 거 못 보게 하는데 워낙 급해서 그랬다고 했다.


편의점서 바나나 우유를 사 와서 엄마 배에 넣어주었다. 호스에 넣었는데 엄마는 의식 없이 입을 쩝쩝 다셨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마냥. 간호사는 아까 전화 통화한 자식들과 비교하면서 나보고 효녀라고 했다. 대놓고 짜증 냈다.


"니미 죽기 전에 의식도 없는 사람한테 바나나 우유 넣어준 게 효도여?"


엄마는 그날 밤, 바나나 우유를 마지막으로 먹고 별이 되었다. 맑은 가을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쳤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엄마는 이 노래를 참 좋아하였다. 합창단원으로 곱게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처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엄마는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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