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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an 10. 2019

집착 버리기

결혼하고 이사한 날 저녁,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뒤주를 가지고 가란다. 엄마 유품이니 하나 가져가라고. 나는 결사반대했다.


"아, 안돼요, 안돼. 새 아파트라 놔둘 데 없어요. 거기 붙어있는 구닥다리 귀신 괜히 우리 집 귀신하고 싸울라. 오래된 물건 갖다 놓으면 집이 안 편해. 귀신들끼리 싸우느라."


미신을 믿어서 그런 건 아니고, 엄마 아빠가 살아생전에 고가구들을 못 버리고 집착하는 게 엄청 싫었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300만 원짜리 자개장롱.


 "그때 당시 300만 원이면 집을 살 수 있었어. 집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이건 나중에 팔면 잘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이런 사고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버려야 새 물건이 들어오지. 집구석에 박아져 있던 500만 원짜리 그림도 버려버렸다. 그림은 25년 전 아빠가 진급 준비할 때 선물로 보낼 그림이다. 내가 넘어뜨려 표구가 깨져버려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을 볼 때마다


 '그때 이거 안사고 집을 샀으면... 그때 이걸 선물로 줬으면 진급해서 연봉이 얼마...'


  아빠가 술에 취해 되풀이했던 말이다. 몇십 년 전의 잘못된 선택을 곱씹고 후회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눈에 안 보이면 좀 더 빨리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좀 길게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결론은 아빠의 색소폰을 다시 가져가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아빠 돌아가시고 외삼촌이 아빠 색소폰 안 쓰는 것 있으면 하나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우리는 아빠 유품이니 안된다고 거절했다. 그때 외삼촌이 너무 서운해하셨다. 하나만 있다면 모를까 세 개나 있는데 그중 못쓰는 것 하나는 줘도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마음 불편했지만 어쨌든 거절하고 몇 달이 흘렀다.


여름 가족모임에 외가 식구들 다 모였다. 사촌오빠가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불었다. 그걸 보고 있는 외삼촌이 괜히 짠했다. 늙은 나이에 돈도 없는데 고가의 색소폰을 사서 부느니 안 배우고 만다고 하셨다. 아빠 유품이랍시고 창고에 곰팡이 피워가며 썩히고 있느니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게 돈의 가치는 아닐 것이다. 나중에 외삼촌이 못 불게 되면 그때 다시 가져오면 되는 거다.


집에 가서 색소폰과 반주기를 챙겨 왔다. 외삼촌은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연신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내 맘도 기뻤지만 걱정도 되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이왕이면 쓸만했으면 좋겠다. 오래돼서 못 분다고 하면 외삼촌 상심이 더 크실 텐데. 다행히 수리점에서 나사를 조이니 색소폰을 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고맙다고 디카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정말 고맙다. 행복하게 살자." 또박또박 쓴 쪽지가 나를 더 뭉클하게 했다. 외삼촌과 간간히 통화했다. 혹시 색소폰을 못 불게 되면 처분하지 말고 다시 돌려달라는 부탁도 했다. 외삼촌은 당연히 그러마 하셨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 노래 한두 곡 정도 하신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아빠의 색소폰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오래돼서 자꾸 고장이 난다고 다 수리하면 60만 원 정도 드는데 그래도 계속 고장 날 거라고 했다. 수리점에서 5만 원에 팔라고 했다고. 반주기도 색소폰용이 아니라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칠순 기념으로 유럽여행을 보내줄까, 가족여행을 할까 물어봤다고 하신다. 외삼촌은 여행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니 그 돈으로 색소폰을 사달라고 하셨고 색소폰을 사기로 했다는 것이다. 혹시 아빠 꺼 좋은 색소폰 있냐고 물어보셨다. 소송 때문에 팔아버렸고, 아빠 색소폰 지금 한 700만 원 정도 하고 중고도 400 정도 할 거라고 했다.


"정말 잘 됐네요. 이왕 하실 거면 좋은 걸로 연습하면 좋죠, 정말 잘됐네요. 외삼촌."


정말 잘된 일이다. 나는 아빠 유품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쓸모가 없어졌으니 창고에 마음 놓고 박아놔도 되겠지. 외삼촌도 좋은 색소폰으로 재밌게 연습하면 좋은 거다. 그런데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5만 원에 파느니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외삼촌도 아빠 유품이니 그게 낫겠다고 하셨다. 외삼촌은 거실 정리할 것도 많고 하니 가져갈 거면 좀 빨리 가져가라고 하셨다. 다음 주 평일 즈음에 찾아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했는데 막상 좋은 악기가 생기니 아빠 물건이 찝찝했나. 혼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빠 유품을 다시 가져왔으니 된 거고, 외삼촌은 좋은 색소폰으로 연습하면 더 좋은 거다. 외삼촌도 생각해서 5만 원에 처분하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하셨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빨리 가져가라시니 맘은 급한데 세 식구가 다들 감기에 걸려 도저히 혼자 아기 데리고 운전은 무리였다. 오늘은 몸이 좀 나은 기분이다. 이번 주는 넘기기 싫어 외삼촌께 전화했다. 아빠 색소폰 가져가겠다고. 외삼촌은 아빠 색소폰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셨다. 결론은 다른 곳은 5만 원에 판다는데 한 곳이 12만 원 준다고 해서 12만 원 받고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순간 멍해졌다.


"외삼촌~ 아빠 유품인데.... 제가 찾아간다고 했잖아요. 안 쓰시면 저 주라고 처음부터 그랬잖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다시 찾아올 수도 없고 어쩐다냐. 네가 12만 원 보태준 셈 치고 연습 잘하마. 고맙다."


화도 났다가 허무했다. 미안하단 말도 없다. 처음 색소폰을 받아갈 때 그렇게 좋아해 놓고. 새 악기가 생기자 가차 없이 팔아버린 외삼촌이 정말 미웠다. 그것도 내가 며칠 내로 가져간다고 했는데. 아무리 고물이라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팔 아지나 싶어 또 서운했다. 처음 색소폰을 꺼낼 때 내 인감도장이 거기서 나왔다. 아빠가 생전에 나한테 색소폰 주겠다고 여러 번 말을 했었다. 그 모습도 봐놓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외삼촌, 12만 원 제가 드릴 수도 있는 돈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아빠 유품을 팔아버릴 수가 있어요? 그리고 반주기도 아빠는 다른 악기 하고 같이 연주한다고 일부로 더 어렵게 부신 거예요. 색소폰 코드로 안 바꾸고. 필요 없으면 돌려주면 되지 그거 팔려고 알아보고 다니셨어요? 악기사 가르쳐주세요. 웃돈 얹고라도 다시 가져와야겠어요.'


문자를 보내려다 참았다. 이모한테 전화해서 흉보려다가 참았다. 12만 원 받으려고 막내사위 유품을 팔다니. 손주까지 보고 살면서 그 돈이 욕심이 날까? 자식들이 몇백만 원짜리 색소폰을 사준다는데 남의 자식의 유품은 팔아버리고. 어이구 궁상~ 지지리 궁상이다.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것저것 좋은 것으로만 챙겨주시는 시어머니. 몰래 10만 원 20만 원 봉투 숨겨주시는 시아버지. 외삼촌도 당신 자식에게는 그런 부모겠지.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미안해서 그렇게 팔아버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맘 편하다.


아빠의 색소폰. 이제 진짜로 잊어버려야겠다.

'남기려면 돈이나 좀 많이 남기고 가지, 고물딱지 색소폰이나 남기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소? 두고 봐. 더 잘살아 줄게요.'


내 자식에게는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다. 돈 때문에 힘들 때가 많지만, 궁상만은 절대로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엉뚱한 선심 그만 쓰고 내 가족에게나 잘하고 살아야겠다. 그래서 덕분에 연휴 때 대판 하고 냉전 중이었던 시어머니에게 먼저 전화했다.


"맨날 시골로 오라고 하니까 싸우지! 밤을 내가 기가 막히게 구워줄 테니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오시오!!"


미워했던 여동생에게도 카톡 했다.

"오리탕 끓여 갈게 제부랑 남동생 먹으라 하고 우리는 스테이크 썰러 가쟈~!"


나는 오늘 이렇게 세상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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