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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an 10. 2019

첩년의 자식새끼

좋은 말도 나쁜 말도 말하는 대로

아빠는 첩년의 자식새끼라 불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셋째 처였다. 할아버지는 상처하고 새 처를 얻었지만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가 상처하고 재혼을 한 것이니 할머니는 첩은 아니다. 전 할머니의 아들, 큰 큰아빠는 우리 할머니에게 첩년이라고 했고, 그의 자식들에게 첩년의 자식새끼라고 욕하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상처하고 새 처를 얻었지만 팔자가 그런지 또 상처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제일 큰아빠와 우리 아빠는 배다른 형제이다. 그렇게 살면 좀 잘 살 것이지 막내 고모가 세 살 때, 아빠가 여섯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와 큰 큰아빠 하고는 열한 살 나이 차이가 났다. 큰 큰아빠는 젊은 새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첩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에게 첩년의 자식새끼라고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웬만큼 재산이 있어서 장가도 다시 가고 그랬다고 하는데, 셋째 처의 막내아들에게까지 갈 재산은 없었다. 가난한 시절 아빠의 한. 들을 때마다 눈물 난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흘러~~~ 큰 큰 아빠도 돌아가시고 큰아빠도 돌아가시고 우리 아빠도 돌아가셨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첩년, 첩년, 첩년의 자식들 하던 큰 큰아빠는 딸이 다섯이다. 그의 딸들이 다들 유부남을 만난다. 한 언니는 외국으로 도피해서 산다고 한다. 마흔을 넘기고 결혼한 언니는 형부가 60대이다. 자식들은 장성했고 마누라와는 이혼했다. 조금 더 자세히는 이혼을 시키고 언니가 결혼을 한 거다. 우리 아빠와 서울 큰아빠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도서관 휴게실에서 동생과 수다를 떨었다. 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동생은 엄마의 수술을 반대했다. 항암치료도 못하게 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치료를 반대하는 곳만 알아보고 다녔다.

"언니, 엄마 수술 어떻게 받는 줄 알아? 엄마 부위가 식도잖아. 식도를 다 잘라내고 거기에 내장을 잘라서 이어 붙인대."


"조용히 좀 해. 옆에 학생 밥 먹고 있잖아."


"뭐 어때. 더러운 이야기도 아닌데. 암튼 그래서 수술하면 식도를 싹 잘라내는데 다시 못 먹게 된대. 결국엔 다시 내장이 막혀서 못 먹게 된대. 수술하면 한 달 안에 다 죽는대. 그러니까 엄마는 수술하면 절대 안 돼."


동생의 눈에는 미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6개월 후 엄마는 동생의 말대로 식도를 다 잘라내고 다시 못 먹게 되었다. 다시 내장이 막혔다. 수술하고 한 달 조금 지나 하늘로 갔다. 말하는 대로 되었다.


엄마는 다른 암환자들보다 더 독한 항암제로 치료를 했다. 암덩어리는 항암치료할 때만 잠깐 수그러들고 무섭게 커졌다. 암이 기도를 막아 숨도 못 쉬게 되었다. 전대병원에서 시한부를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자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은 날 동생은 회사에서 나와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를 설득하고 아빠를 잡고 울었다. 엄마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엄마는 수술하고 잘게 다진 음식부터 먹기 시작했다. 그땐 미혼이어서 잘 몰랐지만 아기들이 이유식을 시작하듯 씹는 연습, 삼키는 연습 하는 것과 비슷했다. 한 3일 음식을 잘 넘겼다가 다시 못 먹게 되었다. 엄마가 환자용 영양 캔을 사 오라고 했을 때 가슴이 쿵 했다. 영양 캔은 배에 연결된 호스로 넣는 음식이었다. 입으로 먹으려 하지 않고 다시 호스로 음식을 넣으려 했다.


수술받은 다른 사람들은 5일 안에 퇴원했다. 엄마의 퇴원은 계속 미뤄졌다. 곧 추석이 닥치니 연휴 쇠고 퇴원을 하기로 했다. 퇴원해도 일주일 후 검사받으러 병원에 와야 하는데 번거롭다는 이유에서였다. 추석이 지나고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겨 며칠 더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 정도 후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 전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병원비 수납을 하고 오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다.


"암이 온몸에 다 퍼졌대."


기도삽관으로 말 못 하는 엄마는 암이 다 퍼졌다고 수첩에 적었다. 수술받은 지 한 달 만에 암덩어리가 다 퍼졌다고 했다. 동생이 말하는 대로 됐다. 엄마는 암이 다 퍼져 수술받고 두 달 만에 죽었다.


노래처럼 말하는 대로 되었다. 희망, 소망, 소원도 계속 확언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마찬가지고 불평, 불안, 걱정도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현실이 된다니 두려웠다. 그래서 항상 긍정을 말하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하는 거구나. 아무렇게나 툭툭 뱉은 말들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다.


"저 사람은 너무 못생겼어."

"쟤는 너무 뚱뚱해."

"나는 저런 사람 싫어."


예전에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정말 그런가?' 은근히 말한 사람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말한 사람의 얼굴을 본다.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는 눈, 싫은 것만을 말하는 입.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야겠다. 미혼일 적, 날씬했을 적에 뚱뚱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을러서 뚱뚱하다고 한심하게 생각했다. 살찐 친구랑은 같이 다니기도 싫었다. 나는 절대로 살찔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고도비만이다. 그때 가졌던 생각이 벌 받는 것처럼 떠올랐다. 날씬했을 때 뚱뚱한 사람을 무시했다고 내가 뚱뚱해졌다는 논리가 아니다. 그때 가졌던 생각과 말들을 고스란히 내가 다 받게 되었다. 무심코 던진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줬던 내가 그대로 그 말을 다시 다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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