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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Oct 21. 2019

큰 것도 포기해보기

나의 하루가 더 소중하니까




아이가 동생을 암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을 '아가'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응애응애~'하고 다니기도 했다.

"아가야는 우리 집에 언제 와? 비행기 타고 오고 있어?"

 아이 나이 4살. 이제 슬슬 둘째를 생각해야 하나 싶다.


아직 외동일 때 제대로 한번 즐겨보라고 서울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1박을 할까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한 여행이니 놀이공원을 먼저 가기로 했다. 서울을 하룻동안 여행하는 게 더 아쉬울 것 같아 1박은 포기하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놀이공원 퍼레이드 쇼부터 놀이기구까지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아이도 참 좋아했다.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남편과 쉬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유명한 맛집에 가서 밥도 먹었다.

아이가 기저귀도 뗐고 말귀도 다 알아먹어서 그런지 아이와 장거리 여행이 막 힘들지 않았다. 목포 내려갈 때 기차표는 매진이어서 고속버스를 탔다. 우등버스는 타봤는데 프리미엄 버스는 처음 타봤다. 아이 좌석까지 끊어서 편하고 기분 좋게 왔다. 아이가 버스에서 떠들까 봐 걱정했는데 바로 잠들었다.  

"서울구경 아무것도 아니네. 다음번에는 남산타워 가보자."

새벽 2시쯤 집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서 아이를 안고 갈 생각만 했다. 남편에게 내 핸드폰과 가방을 모두 주고 먼저 버스에서 내리고 나는 아이를 안고 늦게 내렸다. 새벽이라 택시는 바로 잡혔다. 우리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나는 소리를 질렀다.

"어떡해. 나 다이어리 놓고 내렸어!"

남편은 몇 초 조용하더니 우리 차 있는 곳에서 택시를 내렸다. 우리 차로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다이어리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남편은 알아주었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사님은 퇴근하고 없었다. 버스도 문이 잠겨 있었다. 다른 버스 첫차 운행 준비하는 기사님께서 도움을 주려고 하셨지만 결국 다이어리는 찾을 수 없었다. 매표소 직원은 본인 업무가 아니라며 모른다고 했다. 터미널을 달려 다녔지만 다이어리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도 누웠다. 혼자 걱정하기 시작했다.

'뒷자리에서 나보다 더 늦게 내린 남자가 주워가 버렸으면 어떡하지? 젊은 남자던데. 돈도 안 들어있겠다 그냥 버렸으면 어떡하지?'

나는 내 다이어리를 가져갔을 것 같은 사람을 의심하고 상상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가죽으로 된 10만 원 넘어가는 다이어리, 속지까지 15만 원 정도의 가격은 가정주부가 사기엔 큰 고민이 필요했다. 돈의 아까움보다 그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끄적임, 소재거리들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고민 많이 하고 산 다이어리. 3년 넘게 끄적이며 잘 쓰고 있었는데 이 다이어리를 서울여행 다녀오면서 잃어버렸다.

밤에 버스에서 잠이나 잘 것을 뭐한다고 다이어리를 꺼냈는지 모르겠다. 잠깐 한 3분 끄적이고 의자에 놓아두었다. 피곤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 좀 보고 그냥 멍하니 눈감고 있었다.

새벽 4시. 다이어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 손을 떠난 것을 생각하느라 즐거웠던 오늘 하루까지 날아갈 지경이었다. 다이어리 속 내용들은 거의 핸드폰 속에 저장이 되어 있다. 다이어리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치기 싫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기로 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왕 잃어버린 거 더 예쁜 걸로 하나 사야지.'

 다이어리를 내 마음속에서 내려놓고 나니 다시 즐거웠던 하루가 눈앞에 그려졌다. 마음 편히 새벽잠을 잤다.

아침에 터미널을 찾았다. 다이어리는 내가 탄 버스 안에 있었다. 기사님이 찾아서 앞자리에 두고 퇴근하셨나 보다.  포기한 다이어리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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