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 수서역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누구든 연주할 수 있다. 작년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여기서 연주하는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그랜드 피아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반성했다. 할아버지의 연주는 정말 멋졌기 때문이다. 행색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어렵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2곡 정도 더 듣고 모임 장소로 향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한다는 서울. 갈 때마다 새롭다. 문화적으로 즐길게 참 많다. 할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뒤로 하고 걸어가면서 의미심장한 다짐을 했다.
'서울에 또 온다면 저 피아노에서 멋있는 연주를 한 번 해보리라.'
그 다짐으로부터 1년 후. 며칠 전, srt 수서역 그랜드 피아노를 다시 마주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피아노는 그대로 있었다. 이날은 먼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미친 척하고 앉아볼까? 뭘 연주하지? 엘리제를 위하여? 이왕이면 있어 보이는 걸로? 아님 요즘 유행한다는 뉴에이지??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결국 피아노 앞에 서지 못했다.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작년에 그렇게 다짐하고 집으로 와서 나는 단 한 번도 피아노 연습을 한 적이 없다. 악보를 본 적도 없고 아니 피아노 뚜껑 자체를 열지도 않았다.
버킷리스트를 이룰 기회가 눈 앞에 있었지만 나는 그 기회를 나 스스로 외면했다. 그냥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즉흥연주를 하며 박수를 받는 장면, 딱 거기까지만 상상했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하는 척하면서 멋진 사진 한 장 건지는 게 목표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어떤 곡을, 혹은 몇곡을 연주할지 나는 어떤 연습을 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에 피아노 앞에 서는 일이 있다면 정말 멋들어지게 연주 한 번 해봐야겠다. 적어도 세곡은 쳐야지. 악보를 보지 않고 끝까지 연주할 정도는 되어야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너무 쉽지는 않은 곡으로 골라봐야지. 그리고 틈틈이 연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