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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ul 29. 2020

(샘터 8월호 특집)네가 좋다고 한 곳, 난 별로던데?

샘터 8월호 특집에 실렸어요

가까운 곳에 라벤더 농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가져야 할 덕목은 스피드! 지금 당장 가야 한다. 어물쩡 미루다가는 꽃이 다 져버린다. 내년에는 이미 알려져서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구경을 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라도 찍어버리면 아우~ 무조건 지금 당장 고! 해야 한다.

먼저 다녀온 선생님께 박지도 위치를 물어봐 동네 맘친구들을 꼬셔냈다. 아직 등원을 못하고 있는 아이와 나, 그리고 친구 둘을 데리고 도시락까지 야무지게 싸서 출발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우리가 전세내고 라벤더를 즐길 수 있었다. 너무 예뻐서 주말에 남편과 또 다녀왔다. 아이 유치원 적응하면 혼자서 한 번 더 다녀올까 고민중이다.

그런데 박지도에 다녀온 다른 분은 생각보다 별로였나 보다. 잡초도 많고, 씨를 맺어버린 유채도 안 베고 그대로 있었다고, 무엇보다 한참을 걸어가야 해서 지쳐버렸다고. 비온 다음 날이라 더 힘들었다고 했다.

맞다. 힘들긴 했다. 퍼플교를 건너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고, 걷는 길에는 포크레인이 아직 터를 닦고 있었다. 아직 조성중이라 라벤더 말고는 볼 게 없었다. 쉴 곳이나 그늘이 없어 살갖이 햇볕에 그을렸다. 아이는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너무 보채서 함께 온 친구들에게 미안스럽기도 했고, 말 안듣고 바위에 올라가 떨어져 놀라기도 했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려했는데, 아이는 다시 찾은 퍼플섬에서 또 뛰다가 시멘트 바닥에서 넘어져 두 팔꿈치가 제대로 까여버렸다.


우여곡절로 라벤더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서 아이는 간식을 먹고 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좌회전 해서 큰길로 나가는 길에서 직진하는 차를 못보고 나와버렸다. 상대방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욕얻어먹을 각오로 창문을 열었다. 상대방 아주머니는 큰소리를 내셨고 나는 "죄송합니다"를 두어번 했다. (지금도 너무 죄송합니다.)

집에 와서는 지쳐버렸다. 12000보를 걸어 피곤한데도 사고날 뻔한 상황이 계속 생각나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꼬셔서 친구들 데려갔는데 괜히 고생만 시킨 것 같고, 미숙한 운전으로 놀래킨 것도 미안했다. 꽃구경이 별로였으면 어쩌나.

하지만 모든 안좋음 보다 좋은 게 더 많았다. 해외로 나가야 볼 수 있나 싶었던 라벤더농장이 가까운 곳에 있다. 걷는 길에 무수히 핀 찔레꽃, 평화로운 바닷길, 맑은 새소리, 밭을 서리하는 고라니까지 만났다. 아마 비온 다음날이었으면 풀냄새와 벌레소리까지 환상이었을 것 같다. 이곳이 더 편하고 아름다워 질 즈음에는 그만큼 찾는 이도 많아지겠지. 그때는 이 고요함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네가 좋다고 한 곳, 난 별로던데?"

넌 무엇을 느끼고 듣고 보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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