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강스백 Oct 24. 2019

엄마가 해야 할 일

자식을 아기로 대접해주는 것

 '애기'라는 단어가 좋다. 아기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이름을 많이 부르지만, 나는 그래도 아기에게 "애기"라는 호칭을 더 많이, 오래도록 쓰고 싶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삶의 의지'라는 게 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엄마에게서는 그 삶의 의지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울었다. 간호사들이 말렸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딱 1년만 더 살아주면 안 될까? 나 정말 미안해서 우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한테 못되게 군 것만 생각나. 잘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줘야지. 어? 엄마. 안 죽으면 안 돼?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엄마."

"괜찮아. 괜찮아. 엄마 괜찮으니까 울지 마."

엄마는 나를 말리다 함께 우는 간호사에게 한마디 했다.

"애기가 엄마 어디 갈까 봐 놀라서 그래."

나는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엄마의 애기가 되었다.


"동생들 본보기가 돼야지. 공부해."

"큰누나가 되어서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너는 큰애가 되어서 도대체 왜 그러니?"

애기 소리를 듣고 나서 '큰딸, 큰누나, 양보, 본보기....' 이런 단어들과 화해했다. 엄마는 나에게 애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도삽관을 했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기가 이제 4살(32개월)이 되었다. 어린이집도 잘 적응하고 제법 남자아이 기질이 나온다. 커갈수록 아기에게 새로운 호칭과 역할들이 생기겠지. 형이나 오빠가 되어도,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되어도, 변성기가 와도, 중2병이 도져도, 고3 수험생이 되어도... 네가 나의 애기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겠다.


엄마는 수술하고 말을 못 하게 되었지만 음식은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뭐가 먹고 싶다, 뭐 사 오라는 심부름을 했다. 포도, 복숭아, 피자, 음료수, 수제비... 병원 근처에서 파는 모든 음식들을 사 왔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서 나 먹으라고 줬다. 음식을 소분한 그릇을 나에게 줬다.

"엄마 먹고 싶다며? 엄마 먹어."

"응. 나는 입맛이 없어서 밥때 되면 먹을게."

나는 엄마가 준 음식들을 받아먹었다. 어떤 날은 토할 것 같았고, 느글거리기도 했다.

엄마는 나 어린 시절, 내가 먹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동생과 함께 쟤 또 식탐 부린다며 낄낄거리곤 했다. 동생 입에서

"엄마가 언니 식탐 부린다잖아."

이 말이 나왔을 때는 큰 싸움이 나기도 했다. 내 몫을 양보해야 했고, 내 감정을 양보해야 했다. 음식을 숨겨놓고 먹었고, 물건을 자물쇠로 채워놨다.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두 달밖에 안된다고 했을 때 나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엄마만 웃고 있었다.

"엄마, 큰 딸 낳은 거 후회되지 않아? 나는 나 같은 큰딸이 싫어. 첫째는 꼭 아들 낳고 싶어."

"아니여. 첫째는 무조건 딸을 낳아야 해. 무조건."

"동생들이 언니 역할 못한다고 무시하잖아. 엄마, 언니 역할이 뭐야? 나는 나 같은 딸이 싫어."

"아냐. 네가 꼭 필요했어."

엄마는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려는 것 같았다. 동생이 생기면서부터 의젓해야 했던 모습. 큰딸이라 물질적으로는 지원을 많이 받았지만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다섯 살 때부터 의젓해야 했던, 그래서 아기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나에게 제대로 아기 대접해주고 가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다 받아먹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미웠던 엄마였어도, 한심한 엄마였어도, 짜증 나는 엄마, 무서운 엄마, 답답한 엄마, 아픈 엄마였어도 엄마가 죽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 자랑 좀 해보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