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엔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기억 : 5000달러를 잃다?!'와 연결되는 글입니다)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것. 호주에서 환급받지 못했던 텍스(Tax, 세금)와 연금 환급에 관한 것이었다.
호주 국세청, 회계사에게서 온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내가 약 4000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내고도 환급을 받지 못했고, 1000달러가 넘는 연금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내게 메일을 보내온 것이었다. 메일을 보내온 사람의 말로는 자신의 지인은 6개월이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세금을 환급받았다고 했고, 나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세금 환급을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어라, 6개월이 안 됐는데도 받았다고?
밑져야 본전 아닌가. 받으면 좋은 거고, 못 받아도 본전 아닌가? 나는 이미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호주의 세금'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낸 것을 돌려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텍스 리턴 신청 기간이 끝났고, 난 호주에 있지도 않은데 해 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면 신청하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 나는 호주를 떠났고, 호주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메일이 왔다.
호주에 없어도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못 받는 게 말이 안 된다. 어차피 회계사 사무실에 가봐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때 가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 주겠다. 일 한 날짜와 금액을 알려주면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
그러면서 자신이 찾은 회계사의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텍스 환급과 관련해서 메일을 몇 번 더 주고받았고, 나는 직접 회계사와 연락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있다 보니 텍스 환급 절차는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주와 한국의 시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텍스의 환급을 위해서 호주에 있을 때 이용하던 은행인 ANZ Bank의 인터넷 뱅킹이 사용 가능한지 확인해야 했고(만약 세금을 환급받았는데 인터넷 뱅킹이 안된다면 돈을 가지러 호주에 가야 한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할 때 내 연금이 들어갔던 AMP 콜센터와도 몇 차례 통화를 해야 했지만, 연금 회사는 여전히 불친절했다.
회계사와 메일을 통해서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텍스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한 번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호주 체류 기간이 6개월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했고, 회계사는 기본 원칙을 이야기했다.
"호주 거주 기간이 6개월이 안되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 29%를 세금으로 내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계속 갈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세금 환급'은 받으면 좋은 것이었지만, '29%'라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원래 '없던 돈'이라는 생각에 나는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조금씩 잊혀갔다.
어느덧 2달이 지났다.
메일함을 뒤지다가 회계사와 주고받았던 메일을 발견했고, 나는 'Go'를 선택했다.
회계사의 지시에 따라 회계 사무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세금 신청서'를 작성했고, 필요로 하는 서류(페이 슬립/임금 명세서)를 스캔하여 첨부했다. 다행히, 호주를 떠나기 전에 임금 명세서를 비롯한 호주 관련 물건들을 국제 배송(EMS)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 놓았기에 관련 서류를 모두 제출할 수 있었고, ANZ 뱅크의 계좌 또한 유지해 놓은 상태라서 환급 계좌까지(환급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제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세금 환급 신청을 했지만, 그 뒤로 회계사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서류가 잘 도착했다든지,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든지, 아니면 서류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나는 그저 '세금 환급 대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환급을 받지 못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
일상에 매몰되어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세금 환급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6월에 회계사와 연락하며 세금 환급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환급 신청 접수'는 8월 말이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세금 환급'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한 해가 지났다.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메일함을 뒤적이다가 '세금 환급'을 권유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고, 그는 내게 "세금 환급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아, 세금 환급. 어떻게 됐지..?'
마침, 텍스 리턴을 하기 위해 구입했던 국제전화 카드의 잔액이 남아 있었고, 호주 국세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라, 이게 웬일인가. 호주 국세청에서 텍스 리턴이 완료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난 회계사한테 환급됐다고 들은 적이 없는데?
'환급 완료' 소식을 들은 직후, 회계사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날 오후 바로 답장이 왔다.
"텍스 리턴은 9월 15일에 완료가 되어 기입하신 계좌(ANZ Bank 계좌)로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
송금 금액은 총 3,413.05 달러(AUD)였다. 약 4,000 달러 중 여기에서 세금 15%가량을 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환급해 준 것이었다.
오, 대박.
갑자기 하늘에서 350만 원이 떨어진 기분이랄까?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ANZ Bank 계좌에 관리비 명목으로 100달러를 남겨두고, 인터넷 뱅킹을 통해 나머지 금액을 모두 송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낸 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깝다'라고 했지만 모두들 그냥 지나쳤고, 나도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나를 도와주었던 그분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분은 내게 작은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고, 그것이 나에게 생각지 못한 행운으로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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