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일은 추억이 되었다.
(이 글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기억 - 나는 배신자인가'와 연결되는 글입니다.)
새로운 농장 일을 하기 위해 카나본에 도착했을 때 걸려온 소시지 공장으로부터의 전화. 나를 믿고 의지하고 있던 마크 형과 기욱. 그들은 나에게 '함께 있자'고 말했지만 나는 '떠나겠다'고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내가 꿈꾸던 호주 생활은 영원히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기욱. 마크 형과 나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갔다. 나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크 형.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나. 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해야 했다.
"배신자, 양아치 새끼"
답답하고 화가 난 나머지 마크 형은 나를 그렇게 불렀지만, 나는 형을 미워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나를 믿고 있었고, 내가 있어야 농장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들에게 나의 '퍼스행 선언'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함께 하자던 내가 떠난다. 나는 배신자였다.
공장 일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말에 바다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농장에서 일하던 시절, 주말에 마크 형, 기욱과 함께 낚시를 하러 다니던 생각이 났다.
'마크 형과 기욱은 아직도 카나본에 있으려나?'
마크 형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이~ 양아치, 무슨 일이야?"
"형, 뭐하고 지내요? 아직 카나본이에요?"
"카나본에서 내려온지 한참 됐다. 스티브 형님하고 같이 드루먼 밑에서 일하고 있어."
마크 형은 스티브 형님과 함께 퍼스 근교에서 농장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욱, 소피 누나까지 넷이서 함께 다시 드루먼의 밑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내가 카나본을 떠난 후, 한동안 카나본의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기욱과 마크 형은 농장의 숙소에 머물면서 일을 했는데, 백팩커스에서 지내던 스티브 형님과 소피 누나가 종종 농장 숙소로 놀러와 함께 지냈다는 것이다. 농장주는 스티브 형님과 소피 누나가 농장 숙소에 들락거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결국 그 일이 농장주와의 불화로 이어졌다. 어느 날, 농장주는 농장 숙소를 깨끗이 사용하지도 않고, 허락도 없이 외부인이 출입한다는 이유로 마크 형과 기욱에게 떠나라는 말을 했고, 카나본의 일도 그렇게 끝이 났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그 무렵 드루먼이 스티브 형님에게 다시 일을 하러 오라는 제안을 했고 마크 형과 기욱, 소피 누나는 드루먼의 회사로 들어가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크 형은 주말이면 가끔 퍼스로 놀러 온다고 했다. 함께 농장에서 일하던 시절, 우리는 주말에 가끔씩 퍼스 크라운 호텔(Crown Hotel)에 있는 카지노에 들르곤 했는데, 마크 형은 요즘도 가끔 카지노에 가서 룰렛(roulette)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술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고, 마크 형에게 나중에 술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농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사는 리치 하이웨이의 윈스롭(Winthrop)에 잠깐 들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바다에서 건져낸 '전복'이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마크 형에게 전화가 왔다.
"배신자, 잘 사냐?"
"형, 오랜만이에요. 저는 잘 있죠. 형도 잘 지내죠?"
"나 한국 간다. 그냥, 한국 가기로 혔다~"
"진짜요? 언제 가는데요?"
"다음 주에 간다. 가기 전에 함 봐야지?"
"네, 그래요. 가기 전에 한 번 봐야죠."
마크 형과 기욱. 그리고 나. 우리 셋은 퍼스 시내의 한국 술집에서 만났다.
형은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형은, 자기가 호주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건강만 나빠졌다고,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호주에 온 마크 형. 형의 여자친구는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마저도 건강이 나빠지면서 호주에 대해 안 좋은 기억만 남게 됐다며 혀를 찼다.
기욱은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그동안 친형제처럼 지내오던 마크 형이 다음 주에 한국으로 떠나지만,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고 했다. 드루먼의 농장일도 끝났고 새롭게 일을 구해야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무엇 하나도 쉬운 것은 없었다.
"형 드시고 싶은 거, 전부 주문해요."
"이 새끼, 돈 많이 벌었나 보다?"
"그냥, 조금 벌었어요."
호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 본 소주. 그날, 술값은 걱정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가 카나본을 떠난 이후, 마크 형과 기욱은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카나본의 무더위 속에서 일을 할 때면,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어 괴롭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잘 해라. 넌 뭘 해도 될 놈이다."
"형도 조심히 잘 돌아가세요. 한국에서 봐요."
마크 형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기욱은 퍼스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갔다.
그 후, 우리는 한국에서 만났다.
호주에서의 일은 추억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했던 과거였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웠던 한 때였지만 모두에게 하나의 '추억'이 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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