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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25. 2016

그곳에도 웃음소리가 있다 : 인도 타르사막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여행자가 낯설 뿐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메마른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봄을 맞이했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 때문에 인도 북부 카시미르&점무 주(州) 스리나가르(Srinagr)의 달 호수(Dal Lake)에서 며칠 머물렀지만, 실수 치고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누군가는 '달 호수'의 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멀고 험난한 여정을 감내한다는데, 나는 우연찮게 달 호수에서 봄을 보았다. 달 호수를 떠난 나는 며칠을 달려 지금은 인도 서부 라자스탄(Rajastan) 주 자이살메르(Jaisalrmer)에서 타르 사막(Thar Desert)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관련 글 - 히말라야 산자락, 달 호수 위에서 봄을  보았다.)



   장소 : 인도 라지스탄 주 자이살메르(Jaisalmer)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원은 총 3명. 폴란드 출신의 마그다와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토머스,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었다. 팀원이 되기로 결정을 한 것은 나였다. 다다익선이라 했던가. 마그다와 토머스도 둘 보다는 셋이 낫다고 말했고,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과 오믈렛. 그리고 커피 한 잔. 식사를 마친 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샤워를 하며 지난밤의 찌뿌둥함을 흘려보냈다. 또 하나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1박 2일. 우리의 여정은 복잡할 것이 없었다. 사막의 경계에서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닐다.' 

  뭔가 낭만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사막과 낙타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환상의 조합 아니던가. 사실, 나는 이 하룻밤을 위해 이 메마른 도시 '자이살메르'를 찾은 것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발가벗겨진 대지, 사막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던 나였다. 


※ 지프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야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프(Jeep car)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도시와 도시 외곽, 모든 곳이 황톳빛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을 '사막'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사막은 좀 더 먼 곳에 있었다. 완전히 메말라버린 땅, 버려진 땅을 사막이라 불렀고 그곳으로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을 안내했다. 지프는 아무도 살지 않는, 먼 옛날의 영광만이 스며있는 궁전터를 지났고, 풍력 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들을 지났으며,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지프가 속도를 낼수록, 주변에 생명체가 사라져 갈수록 우리는 조금씩 흥분해 갔다. 


  와-우, 와우, 룩(Look)!

  기대와 흥분 속에서 모든 것들은 볼거리로 둔갑했다. 강렬한 태양 빛을 견디다 못해 날카로운 칼로 수박을 가르듯 쩍쩍 갈라져버린 돌덩이들조차도 이방인들의 눈에는 신기한 것이었다.

  포장도로의 끝, 사막의 경계에 다다랐을 때 지프는 사막으로 헤집고 들어갔고 지프는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타 네 마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를 사막으로 안내할 낙타. 우리는 차에서 내려 낙타꾼(안내자)이 안내하는 대로 차례로 낙타에 올랐다. 세 마리의 낙타는 나와 마그다, 토머스를 등에 업고 갈 낙타였고, 나머지 한 마리는 우리가 하룻밤 동안 먹을 음식을 등에 실은 낙타였다.

  땅에 엎드려 있던 낙타가 낙타꾼의 지시에 따라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등자에 발을 고정해 놓지 않았더라면 자칫 낙타에서 추락할 수도 있었을 법한, 흡사 놀이공원의 로데오 황소를 탈 때나 느낄 법한 휘청거림이었다. 낙타는 아직 걸을 준비가 덜되었는지,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네 마리의 낙타가 일열로 늘어섰고, 우리는 사막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낙타 등에 올랐을 때의 즐거움은 잠시뿐이었다. 낙타가 사막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엉덩이가 배겨왔다. 더군다나 낙타의 불규칙적인 걸음걸이는 엉덩이 근육에서 긴장을 뗄 수 없도록 했다. 엉덩이의 고통과 사막의 후끈함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현실의 고통은 그동안 상상해왔던 '이상적인 낙타 사파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고, 초보 여행자에겐 가혹한 현실일 뿐이었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올랐을 때 사막의 후끈함은 절정에 다다랐다. 낙타꾼은 계속해서 사막을 걷는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했는지, 낙타들을 나무 그늘 아래로 몰아갔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아, 천국이 따로 없구나. 낙타 등 위가 아닌 나무 그늘 아래, 그곳이 최고의 안식처였다.


※ 우리가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낙타도 휴식을 취한다.


※ 사막에 있는 마을. 마을이 보이자 우리는 사막에서 내려 걸어갔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갈 길이 멀다. 낙타꾼은 다시 낙타를 몰았고, 낙타는 더 깊은 사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쯤 지났을까. 사막 군데군데 자란 풀더미 사이로 양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앞쪽, 일렬로 늘어선 양떼의 끝에 흙으로 지은 건물들이 몇 채 보였다. 마을이었다. 사막의 가운데 있는 마을.

  우리는 낙타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이따금씩 모래 바람이 불어 흙먼지를 일으켰다. 마을은 조용했다.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영화에서나 보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황량한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마을에 다가가자 하얀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나왔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다가 술래를 놀라게 하려고 모두가 뛰쳐나온 것처럼, 문을 박차고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마을의 남자아이들이었다. 이제 막 학교에서 수업이 끝났는지, 칠판에는 아직 힌디어로 뭔가가 적혀 있었고 아이들은 이방인들을 둘러싸고 소리를 질러댔다. 서로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날뛰었다. 


  아이들의 아우성. 그 틈 사이로 사막을 가로질러 마을로 향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저 여인들은 마을 근처의 오아시스에서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내 시선은 아우성치는 아이들이 아닌 여인네들의 발걸음을 좇았다. 여인들을 따라잡고 싶었지만 그네들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곳엔 머리에 양동이를 인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포토, 포토.."


  나는 그녀의 사진을 한 장 찍었고, 그녀의 모습이 담긴 작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그녀는 씨-익 웃어 보였다. 봄바람이 수줍어 고개 숙인 수선화처럼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작게.

  "땡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고맙다고 했다. 나는 웃어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물을 길어 마을로 돌아가는 여인들(위). 물을 길어 오던 한 여자아이가 내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신발도 신지 않았던 여자 아이.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보며 수줍어 했다. 마치 봄바람이 수줍어 고개를 숙인 봄꽃 처럼.


  아직도 학교 근처엔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엔 여자 아이는 없었다. 내가 본 여자 아이는 두 명. 둘 다 머리에 양동이를 이고 키 큰 여인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던 게 전부였다. 수줍은 웃음, 그것이 사막의 삶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다시 낙타 등에 올랐다. 아이들은 낙타를 쫒아왔다. 하나 둘 씩 낙타 쫒기를 멈추었고 아이들의 부르짖음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뒤편으로 점점 멀어지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마을에 초록색은 없었다. 흙과 돌, 나머지 공간은 열기를 머금은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처럼 보였다.

   

   태양이 사막 저편 지평선에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멈춰 섰다. 모래사막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곳이 우리가 하룻밤을 묵을 곳이었다. 낙타꾼이 저녁 식사를 준비할 동안 우리 셋은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달 없는 사막은 무한의 어둠이다. 내 바로 옆,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 얼굴의 윤곽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온기뿐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하늘의 은하수와 가끔씩 궤적을 그리며 사라지는 별똥별의 흔적뿐이었다.


  차가운 사막의 아침. 간밤에 내린 이슬의 감촉이 아직 피부에 스며 있었다. 우리는 사막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전에 사막을 빠져나가야 했고, 낙타는 부지런히 걸었다. 올 때와는 다른 길, 양떼와 소떼들 사이로 목동들이 간간이 보였다. 저 멀리 오아시스가 있었고, 우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갔다.


※ 사막에서의 하룻밤. 별들을 지붕삼아 담요 한 장 덮은 채 잠이 들었다.


  오아시스에는 어린 목동들이 있었다. 마그다는 아이들을 위해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 들었고, 아이들은 너도나도 마그다에게 달라붙어 하나라도 더 받아먹기 위해 애썼다. 사탕과 초콜릿을 쥐어든 아이들은 하나같이 싱글벙글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변을 맴돌며 웃었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카메라의 작은 화면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한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며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이 하나 둘 씩 오아시스를 떠나 사막으로 향하자 어린 목동들도 하나 둘 씩 아빠와 삼촌을 따라나섰다. 오아시스에 잠시 모였다가 다시 사막으로 흩어지는 삶.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할아버지가 그랬을 것이고,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한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린 목동들은 그들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행복은 사막에 있는 것이었다.


※ 오아시스에서 만난 사람들. 또 하나의 삶이다.


   사막. 지금 우리는 사막을 불모지라 부르지만, 과거의 어느 때에는 풍요로운 땅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곳을 '풍요롭다'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조하고 메마른 곳이지만 그곳에는 웃음이 넘쳐났고, 작은 것, 우리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이살메르로 돌아온 우리는 성(城) 안의 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 식사했다. 식사를 하며 사막 투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과 함께 하나의 기억으로 남은 낙타와 사막, 그리고 오아시스와 아이들. 우리는 여행자의 삶 속에서 웃음 짓고 있었고, 사진 속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웃음 짓고 있었다

  내일, 마그다는 유럽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을 떠날 것이고 토머스는 뭄바이로 간다. 내일이면 모든 것은 완전한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다. 


자이살메르 구시가에 있는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밤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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