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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30. 2016

갠지스 강에 들어간 남자 : 인도 바라나시

결코 그것은 더럽고 위험한 것이 될 수 없다

두려움은 환상이다.

- 마이클 조던

  마그다와 토머스는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났다. 서로에게 여행을 잘 하라는 말을 남기며 손을 맞잡는 단 한 번의 악수, 그것이 헤어짐의 증표다. 그들이 떠난 뒤 자이살메르에서 3일 밤을 더 보낸 나는 북쪽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찾은 곳은 블루시티로 알려진 '조드푸르(Jodhpur)'. 나는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Varanasi)'로 향했다. 커다란 퍼즐을 맞추듯, 이제 막 하나둘씩 도시를 들르면서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중이었다. 멋진 작품이 될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내일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약간의 두려움이 존재했다.



 장소 : 인도 바라나시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일본인 나오야. 그는 '바라나시(Varanasi)'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바라나시'로 가야겠다. 어차피 바라나시에 갈 생각이었는데 나오야가 그리로 간다고 하니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결정한 바라나시행이었다. 나는 원래 남쪽의 뭄바이(Mumbai)로 가려했지만 기차표를 구할 수 없었고, 즉흥적으로 바라나시를 선택한 것이다.

  조드푸르에서 바라나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기차는 느리게 움직였고 끊임없이 연착했다. 연착한 기차는 조금 더 늦게까지 사람들을 기다리다 역을 떠났다. 그렇지만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나와 나오야는 2등석 침대칸에서 바라나시에 닿기 위해 필요한 그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대화와 침묵. 그리고 사색과 독서의 시간. 2박 3일, 48시간 동안의 기차 안 생활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이번이 세 번째 인도 여행이라는 나오야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LC,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나는 버스를 타고 소나울리로 간 다음 네팔에 갈 거예요. 여행 잘해요."

  소나울리(Sonauli). 그는 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로 간다고 했다. 바라나시에 와 본 적이 있다는 그와 함께라면 '바라나시'의 생활이 편하고 재미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나오야는 승합차를 타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갔다. 그를 떠나보낸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릭샤꾼에게 말했다.

  "갠지스, 가트"


※ 바라나시 역(왼쪽)과 갠지스 강가의 가트로 향하는 길(오른쪽).


  "바라나시에 가면 인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진정한 인도는 '바라나시'에서 느낄 수 있다는 이 말. 의미심장한 말이다. 과연 인도의 어떤 것들을 진정한 인도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기대와 호기심을 잔뜩 품고 바라나시에 왔고 인도의 젖줄이라 불리는 '갠지스 강'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차역에서 갠지스 강가의 가트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인도의 혼잡함. 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거리에는 자욱한 흙먼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시장의 골목. 그 사이사이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좁은 골목길에 떡 하니 놓여 있는 소똥과 그것을 배출한 소의 뻔뻔함. 가히, 바라나시는 인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할 만했다. 아, 또 한 가지 결코 뺴 놓을 수 없는 것. 바로 '갠지스 강'이 있다. 갠지스 강은 바라나시 사람들, 인도 사람들의 삶을 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던가. 갠지스 강을 논하면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강가의 '가트(Ghat)'다. 가트는 제각기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인도 여행 중 많은 시간을 바라나시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하나하나의 가트가 가지는 의미를 잘 모르지만 한가지만은 확신한다. 갠지스 강과 가트는 하나라는 것.


※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던 '에다르 가트(EDAR Ghat)'.

※ 아침 해가 뜰 때의 갠지스강(왼쪽)과 조각배를 타고 아침을 맞이할 때의 풍경(오른쪽)


  이른 아침, 갠지스 강변의 가트를 걷다 보면 강물에 들어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몸을 씻고 있는 인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인도 사람, 바라나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갠지스 강가에서 하루를 연다. 푸근하게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여인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어린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침에 갠지스 강가를 거닐며 하루를 시작하는 관광객들의 눈에는 바라나시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강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조각배를 타고 강 위를 배회하는 관광객들에게도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도의 풍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안내 책자나 인터넷에서는 갠지스 강의 '오염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강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갠지스 강변의 가트 사이를 걷다 보면 시체를 불태우고 난 뒤(화장) 남은 것들을 강물로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으며(현세의 삶을 마무리하고 갠지스 강으로 돌아감으로써 완전한 소멸을 이루면서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되는 것이다), 소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는 광경을 흔히 목격할 수 있기도 하고, 각종 오물과 쓰레기들을 강물에 버리는 장면도 보인다. 갠지스 강물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인도만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흥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정작 그 강물에 몸이 닿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갠지스 강가에는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강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몸을 담갔고, 소들도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강물 속에 들어가곤 했다. 화장터에선 죽은 자를 위한 제를 올린 다음, 장작불로 시체를 태우고 그 시체를 강에 던졌다. 또 한편으론, 아낙네들은 강물에서 빨래를 하고 강가에 널어놓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불현듯 '갠지스 강'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티셔츠와 수건 하나를 챙겨 들고 가트로 향했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있었다. 나는 가트 한쪽에 내 물건들을 놓아두고 한쪽 발을 물에 담갔다.

  강물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여서 그런지 피부에 닿는 공기는 약간의 쌀쌀함을 전해주었지만 강물은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발을 깊숲히, 쭉- 밀어 넣었다. 발가락 사이로 미끈한 무언가가 조금씩 차 올랐고 이윽고 내 발등을 온전히 덮었다. 아마도, 강물 속에 가라앉은 부유물이 아니었을까. 미끈함과 끈적거림의 중간쯤 되는 느낌이 발바닥부터 발등까지 감쌌다. 나는 다른 한쪽 발도 집어넣었고, 강물을 바라보며 섰다. 허리까지 강물의 온기가 전해졌다.


  강물 안팎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강물과 늘 함께하던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 그들의 시선 속에서 '의아하지만 어쨌든 환영한다'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강물은 내 가슴팍까지 차 올랐다. 강물이 품고 있던 온기가 몸속으로 전해졌다. 내 마음은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강물 속에 푹 담갔다. 머리 끝까지, 내 몸이 완전히 강물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푸우우우- 하-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햇살은 나를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뒤쪽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올린 사람들이 있다. 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내게 물장구를 쳤다. 환영한다는 의미였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물장구로 화답했다.

  우연이었을까.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전날 밤, 술에 취했던 나는 아침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지금은 너무나도 상쾌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숙소의 샤워실에서 샤워를 할 때는 느낄 수 없던 상쾌함. 온 세상이 맑고 투명하게 보였다.


나는 갠지스 강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강물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강의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강은 단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에 몸을 담그고 난 뒤, 강은 풍경이 아닌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강가(GANGA), 갠지스 강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숙소 앞 문시 가트(MUNSHI GHAT)에서 갠지스 강으로 들어갔다.


  바라나시에 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인도를 여행했던 한 사람이 쓴 책을 읽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바라나시에 가면 갠지스 강에 들어가라."

  하지만 다른 책, 가이드북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절대 들어가지 말 것. 갠지스 강의 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갠지스 강물은 대장균 박테리아의 수가 기준치의 최소 50배가 넘는다."

  '끌림'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나는 무언가에 홀려 강물에 들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에서 목욕도 하고, 그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데 내가 못 들어갈 건 없잖아'라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이것은 젊은이의 호기였다고나나 할까?


  갠지스 강과 함께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 그것이 바라나시의 삶이고 문화라면 그것은 결코 더럽고 위험한 것이 될 수 없다. 강물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 해질녘, 갠지스 강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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