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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30. 2016

타지마할 논쟁, 아름다움을 놓치지 마세요 :인도 아그라

영롱한 광채를 비추며 자신의 품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타지마할(Taj Mahal). 내게는 인도 여행의 목적과도 같은 곳이었다.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건축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타지마할은 그 명성만큼 기대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리스트나 세계 불가사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그곳. 아름다움은 항상 비극이나 죽음과 함께 탄생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타지마할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장소 : 인도 아그라


  바라나시에서만 3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바라나시 생활은 온갖 희로애락으로 물들었던 시간이었다. 결국 떠나는 순간은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과 작별했다. 바라나시에서 뉴델리(New Delhi). 그리고 그곳에서 남쪽의 아그라(Agra)로 향했다. 아그라에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타지마할'이 있었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하지만 어찌 타지마할을 보러 가면서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너무나도 많은 매체들에서 극찬을 하기를 마다하지 않던 곳이다.


  뉴델리에서 3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곳. 아그라의 시작은 '아그라 포트 역(Agra Fort Railway Station)'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불리는 명소를 이리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있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넓디넓은 인도 곳곳에 수많은 명소들 중에서도 대표라 할 수 있는 타지마할. 나는 기대를 잔뜩 머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타지마할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면 아그라의 다양한 명소들을 곁눈질할 수 있다. 한때 아그라는 옛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이곳에는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 명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명소들은 타지마할의 유명세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 아그라 포트 역 앞의 혼잡함을 지나 걷다보면 타지마할의 입구가 눈앞에 보인다.


  타지마할을 찾아가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다. 큰 길만 따라가다 보면 타지마할의 입구가 보인다. 붉은 사암 벽돌 사이로 꽃무늬가 새겨진 대리석이 박혀 있는 거대한 문(매표소)은 타지마할의 뽀얀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광장을 통과하면 드디어 타지마할이 있는 곳에 닿을 수 있다. 아직 아침시간이지만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타지마할로 향하는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어둠 저편으로 타지마할의 모습이 보인다.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무덤으로 사용되는- 거대하고 웅장함의 상징인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봉긋봉긋한 봉분으로 이루어진 경주의 왕릉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타지마할의 부드러운 곡선이 도드라진다.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화려함이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이 아닌, 극도의 절제미를 드러내고 있다. 은은한 아름다움에 취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이다. 


※ 타지마할 주변에 서 있는 네 개의 기둥은 조금씩 바깥쪽으로 기울어 있다. 자연재해(지진)으로 쓰러질 때도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다.


  22년이라는 세월이 응축된 하나의 작품.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22년간 매달린 끝에 완성된 건물이라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이 위대한 유산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를 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이곳에서 단 하루 만에 22년의 세월을 읽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몇 번이고 멈춰 섰다. 섬세한 손길로 사랑하는 연인의 옷을 한 겹, 두 겹 벗기며 조심스럽게 속살을 들여다볼 때의 마음. 나는 그렇게 타지마할의 모습을 훑어 나갔다. 아무렇게나, 결코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고귀한 무언가를 다루듯, 나는 사원의 입구에서부터 타지마할까지 가로놓인 길 위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타지마할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타지마할은 여전히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채, 가끔은 영롱한 광채를 내게 비추며 자신의 품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나는 타지마할의 곁에 다가섰을 때도 한참을 서성였다. 타지마할의 곁에서 속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그 온전함을 내 피부에 인식시켰다. 때로는 주변을 맴돌며 멀리서 타지마할을 바라보았고, 종국엔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저만치 멀리서 온전한 모습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타지마할을 떠났다. 잊히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있으랴. 눈으로 보고 느끼는 수 밖에.


  사건은 '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뉴델리 빠하르간지(Paharganj)에서 일어났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어느 식당의 루프탑 레스토랑(옥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식당은 여행자들의 쉼터로 이용되기도 하던 곳이다)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여행자가 정보 교류의 장으로 불리던 그곳을 찾은 것이었다. 

  우리는 여행 이야기를 했고 자연스럽게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행자는 타지마할이 어떤 곳인지 물어봤고, 나는 "최고"라고 말하며 무조건 가봐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그때, 같이 있던 준석이 형이 대뜸 "가볼 필요 없어요. 별로예요. 바가지만 씌우고"라는 말을 던졌다.

  준석이 형의 "가지 말라"는 말에 새로온 여행자가 물었다.

  "왜요, 왜요? 별로에요?"
  "거기 입장료 너무 비싸요. 그만한 값어치도 없는데, 외국인들한테만 비싸게 받아요."


  준석이 형은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이야기를 꺼내며, 그 돈이면 차라리 다른 데를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게 낫다며 타지마할에 가는 것 보다는 다른 걸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형이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타지마할은 내국인 입장료와 외국인 입장료가 따로 책정되어 있는데, 외국인 입장료가 30배나 더 비싼 게 문제라는 것이다. 내국인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주고, 그곳에 들어가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형의 말을 빌리자면, "덩그러니 하얀 건물 하나가 있는데, 600루피 씩이나 주고 들어갔다 오기는 돈이 아깝다(인도 사람은 20루피)"는 것이었다.

  "에이 형, 입장료가 아무리 비싸도 가보는 게 좋죠. 지금 아니면 언제 가봐요? 인도에 왔으면 타지마할은 봐야죠. 형은 갔다 왔으니까 그런 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분도 가 봐야죠. 가보세요(씨익-)""
  "야야, LC. 내가 갔다 와서 보니까 별로니까 미리 말해주는 거잖아. 진짜 갈 필요 없어요."
  "그건 형한테 별로였던 거고, 이 분은 또 모르죠. 나는 정말 좋았어요. 돈 하나도 안 아까워요."

  

  준석이 형과 나의 실랑이를 보고 있던 새로 온 여행자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준석이 형이 말했다.

  "아그라에 가면, 입장료 안 내고 볼 수도 있어요. 강 건너에서 봐도 잘 보여요."


  굳이 그런 것까지 말해줄 필요가 있었을까. 형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타지마할의 이미지를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타지마할은 볼품없는 하얀색 건물로 폄훼되어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여행자에게 말했다. 

  "전 정말 좋았어요. 누가 가라 마라 하는 것도 웃기고, 갈까요 말까요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네요.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거면 한 번 가 보세요. 사실 600 루피면 인도에서는 큰 돈이지만 한국 가면 술 한잔 마시면 없어질 돈이잖아요. 한국에서 술 한잔 먹었다고 생각하고 가보세요."

  논쟁은 끝이났다. 그 여행자는 우리와 함께 있기가 불편했는지 금방 자리를 떴다. 우리는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여행에 객관적 가치 판단이 있을 수 있을까. 여행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변수와 개인의 기호. 그 모든 것을 고려한 객관적 판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여행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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